▲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헌법에 명시된 지방자치제도를 임기 내내 휴지로 만들었다. 박정희는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했던 ‘남북대결’을 이유로 1961년 쿠데타 직후부터 이런 위헌 상태를 만들었다.

군사정권이 30년 유보한 지방자치제도는 1991년 다시 지방의원을 뽑으면서 부활했다. 90년대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고 시민의식도 높아져 의원을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관변단체 아닌 시민단체도 90년대 와서 기지개를 켰다.

시민단체가 의정을 감시하려고 각종 평가지표를 내놨는데, 이때 나온 게 의원들 출석률과 입법 발의 건수다. 둘 다 정량평가라 한계가 많은데도 지금까지 널리 사용한다. 이젠 정성평가 지표를 개발할 때다. 출석률과 발의 건수로는 이미 평가의 허점을 악용하는 의원들 꼼수를 당해 낼 재간이 없다. 회의에 1분만 있던, 온종일 참석하던 똑같이 ‘출석’으로 인정하는 꼼수가 판친다. 한겨레는 11월21일 13면에 “의원님 출석점수 만점의 비결 ‘출튀’에 있었네”라는 제목으로 지방의회의 주먹구구식 출결 관리를 비판하는 전면 기획기사를 썼다.

한겨레 기사는 한참 늦었다. 2012년 당시 박영규 경기대 교수와 류여해 전 국회사무처 법제관이 공저한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에도 출석률과 발의 건수로 의원 평가하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짚었다. “시민단체가 십수 년 전부터 의원발의 건수와 본회의 출석률을 집계해 ‘의정 우수 의원’을 발표하면서 더 심해졌다. 진정성은 물론이고 꼭 필요한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발의 건수만 올리면 그만이다. 본회의 출석해 꾸벅꾸벅 졸거나 인터넷으로 누드 화보나 뒤적이는 의원은 출석률 우수 의원이고, 정파별로 몰려 다니는 투표나 몸싸움만 하는 본회의 대신 긴급한 지역이나 관련 시민들과 현장 면담하다가 출석 못 하면 나쁜 의원이 된다.” 누가 더 시민을 위한 의원인가?

법안 발의 건수는 대학생 스펙 쌓기처럼 변질됐다. 촉법소년이 흉악 범죄라도 저지르면 형사 미성년 나이를 낮추자는 여론이 들끓고 의원마다 발의 경쟁이 벌어진다. “A의원은 1살 더 낮춰 13살 미만으로 하자는 개정안을 의뢰한다. 며칠 뒤 B의원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문의한다. B의원에게 ‘A의원이 먼저 의뢰했다’고 알려주면 B의원은 그 자리에서 ‘그러면 우리는 12살로 하죠’라고 고친다. 이러면 2건의 의원 발의 입안이 접수된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여론을 의식한 법안들이다.”<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

지금은 ‘무릎 꿇는’ 퍼포먼스로 더 유명한 ‘보수의 여전사’가 됐지만 당시 류 법제관의 책은 신선했다.

아직도 출석률과 발의 건수로 의원을 평가하는 시민단체부터 반성해야 한다. 최근 법무법인 지평과 한국리서치 등은 좀 색다른 의정 감시 보고서를 내놨다. 이들이 발표한 ‘21대 국회 정책입법 진단과 전망’ 보고서는 다양한 평가 틀을 활용해 “21대 국회가 중장년(4050세대) 고소득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법안을 더 많이 처리했다”고 분석했다.(한국일보 10월18일 1·8면) 반대로 모든 시민이 관심을 보인 전자발찌법 같은 민생 법안은 국회에서 2년째 표류했다. 이 보고서도 “중복 법안 발의가 효율적 법안 처리에 장애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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