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각종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정신병을 앓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넘어 ‘나도 정신병을 앓을 수 있구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주인공인 정다은은 직장에서 자신의 험담을 듣고 사회불안증세를 겪는다.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도 심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돌보던 환자와 같은 처지가 됐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된다.

얼마 전 노회찬정치학교 동문과 연말모임을 가졌다. 함께하기에 의미 있는 활동을 찾다가 혼자 보면 힘들 것 같아서 묵혀 뒀던 영화 <다음, 소희>를 함께 시청했다. 마침 모임 장소가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총괄운영하는 ‘休서울미디어노동자쉼터’인 것도 딱 맞아떨어졌다. ‘休서울미디어노동자쉼터’는 2018년 미디어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었다. 특히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많고 프리랜서 비율이 높다. 이들을 위한 쉼터이자 업무공간으로 활용되도록 공간이 구성돼 있다. 이런 곳이 생긴 건 방송 현장의 과도한 업무와 열악함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 때문이다. 그동안 가 봤던 이동노동자 쉼터와는 다르게 노트북으로 업무할 수 있는 편한 공간과 여성전용쉼터도 있어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쉼터에 배치된 한빛 PD의 사진과 그가 평소에 꿈꿨던 삶에 대한 글을 보면서 소희의 이야기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보였다. 일터의 압박스러운 분위기와 폭력적인 언행들, 평소 꿈꿔 왔던 걸 포기해야만 했던 순간이 어땠을지 가늠되지 않는다.

다은의 일터, 소희의 일터, 한빛의 일터. 일하는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고용형태도 다르다. 그러나 일하면서 지친 마음을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고통스러운 상태였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힘들 때 가족이나 지인 말고 전문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정확한 수치를 내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일하면서 생긴 어려움을 누구에게 토로하는지 물어 보면 대부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는 응답이 대다수다. 전문적인 상담인력을 찾아 가는 건 매우 극소수다. 사실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기에 아직 우리나라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 그리고 노동자를 위한 심리상담 인프라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건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였는데 이마저도 곧 ‘서울노동권익센터’로 통폐합된다. 감정노동센터를 알게 된 건 내가 상담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느 노동자들처럼 일하면서 감정소모가 심했고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여러 곳을 문의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려던 중에 감정노동센터를 알게 됐다. 서울 시민이면서 노동자면 무료로 누구나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상담을 신청해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감정노동센터가 노동권익센터로 통폐합된다는 것에 아쉬움이 매우 크다. 감정노동은 예방이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감정노동으로 다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를 대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태도를 바꾸는 게 근본적인 예방과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감정노동센터는 감정노동의 의미를 알리고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시민 캠페인을 해 왔다. 누구나 감정노동자이고, 감정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노동자를 대하는 사람들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려 왔다. 노무상담 이상으로 감정노동자 심리상담도 필수적인데, 감정노동센터가 통폐합된다면 ‘감정노동’의 의미가 지금처럼 유지될지 크게 우려된다. 통폐합된 새로운 서울노동권익센터가 기존 감정노동센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서울시의 노력이 필요하겠다.

콜센터 상담원이나 간호사처럼 고객이 환자를 주로 상대하지 않더라도, 모든 직업은 사람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감정소모를 한다. 이들이 제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개똥벌레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gs23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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