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길 거라는 예상 자체가 허황한 것이었다. 그 허황함을 좇아 정권과 정치권과 언론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엑스포를 핑계로 대통령은 혈세 수백 억원을 뿌리며 해외 나들이를 했다. 국무총리나 장관들의 외유 핑계도 엑스포였다. 하지만 파리의 결과는 대통령과 정치권과 언론이 그동안 벌인 일들이 모두 호들갑이었음을 생생히 증명한다.

대통령과 장관이야 정권 안정을 위한 인기를 위해 유치에 목을 매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정권이 불러주는 대로 갖다 베낀 언론들인데, 사우디아라비아에 119 대 29로 질지 몰랐던 이런 무능력자들은 사표를 쓰든지, 스스로 아니면 나가든지 해야 한다.

유치전에서 가장 웃기던 대목은 재벌 회장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바람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은 한참 전부터 한국이 유치에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 더군다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도 한참 밀릴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재벌의 정보망이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칠 것이라고 착각할 만큼 허접하지 않다.

최태원 SK 회장은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앉은 사진을 스스로 올리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최 회장을 비롯한 재벌 회장들은 엑스포 유치보다는 권력의 환심을 사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구제받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재벌이 좋아하는 <머니투데이>는 지난 9월5일 ‘단독’이라며 “한동훈 장관, 몰타와 안도라 출장 …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뿌렸다. 살다가 법무부 장관이 나랏돈으로 엑스포 유치를 위해 외유한다는 소리는 이때 처음 들었다.

기사는 “정부가 현재 부산 엑스포 개최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주프랑스 대사관을 중심으로 외교부·대한상공회의소 등 민관합동조를 꾸리고 파리 현지에서 유치 총력전을 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5~11일 인도네시아·인도 순방에서 각국에 부산 엑스포 유치 지지를 당부할 예정이다. 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해 엑스포 유치 활동을 벌인다”고 썼다.

한동훈 장관이 방문한 몰타와 안도라는 부산을 지지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한 인도네시아와 인도, 거기서 만난 각국 지도자들은 부산을 지지했을까. 이상민이 방문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부산을 지지했을까. 막판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신 한국을 지지한다고 언론들이 호들갑을 떤 일본은 과연 한국을 지지했을까. 20년 이상 국제사업을 한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이들 국가 중에 부산을 찍을 나라는 하나도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길 수 없는 구조적 이유는 글로벌 정세에서 한국은 몰락하는 미국 중심의 북반구(Global North)에 올라탄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상승하는 중국 중심의 남반구(Global South)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유치에 실패하자 한국의 여론주도층은 ‘유치’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왕정이며 자유가 없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빈자 입장에서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빈민과 비교해서 어떤 실질적 자유가 더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부자의 입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부자는 한국 부자가 누리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지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국제질서의 토대라는 한물간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면서 미국 중심의 낡은 질서에 반대하는 세력을 “독재”니 “부패”니 “공산전체주의”니 하며 까대는 이념 전사가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를 지지할 남반구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이 부산이 물먹은 근본적 이유다.

혹자는 문재인이 대통령이었다면 부산이 이겼을 것이라고 착각할지 모르겠다. ‘K-민주주의’ 하며 호들갑 떨던 문재인 정권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으로 밀던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은 56표 중 2표(3.6%)를 얻었다. 이번에 부산을 지지한 국가는 165개국 중 29개국(17.6%)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3세계 남반구 국가들이 보기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윤 대통령이나 미국 추종자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이러한 지정학적 정세를 제대로 유념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있을 국제행사 유치전에서 대한민국의 백전백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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