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방문 때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일정상 좌담회에서 한미일이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파격적 발언을 내놓았다. 이에 앞선 지난달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사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해 온 원동력”이라며 이러한 자유가 공산전체주의와 그 기회주의적 추종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외교노선의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2022년 대통령 취임사와 광복절 기념사에서 수십 번 ‘자유’와 ‘가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그것을 공산전체주의와 대립시킴으로써 가치를 이념과 결부시켰다. 그리고 최근 들어 가치와 이념을 철학과 결부시키고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철학이란 세계관을 주는 학문이라고 했다. 백과사전에는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원리 즉 인간의 본질,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나온다. 이른바 거대담론에 해당하는 얘기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지배계급과 그들을 추종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버리라고 하고 버린 그 거대담론 말이다. 장롱에 처박아 둔 그 거대담론을 윤석열 정권이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그의 이런 행태는 역설적으로 경제위기와 전쟁이 빈발하는 지금이 거대담론이 요청되는 시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인 철학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관념론이고 다른 하나는 유물론이다. 근대 이전의 철학은 대개 관념론적 철학, 즉 종교철학이었다. 그런데 과학적 지식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종교적 세계관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천년도 더 전에 신이 자기 종족에게 약속한 땅이라고 우기며 그 땅에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전쟁을 벌이는 시오니즘이 가장 극단적 경우다.

이런 종교적 철학과 세계관은 인간이 아직 세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소외돼 있는 데서 오는 결과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해 인간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느니 마느니 하는 세상에 신을 믿는 종교가 번성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특히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 측면에서 자연의 구속에서 해방된 오늘날, 인간과의 관계의 측면에서 사회적 구속에 심하게 얽매어 있음을 보여준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유물론이 확산했다. 그러나 유물론 안에서도 현존 질서는 자연적이어서 영원하다는 철학이 있다. 근대 자본가계급의 철학이 그러하다. 윤석열이 주장하는 자유주의가 바로 이런 철학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자유주의가 인류 보편적 가치라고 우긴다. 그것은 곧 자본주의 및 그것이 발달한 형태인 제국주의가 보편적 질서라는 말이다. 보편적이라 함은 공간적으로 절대적일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절대적이어서 불변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현존 세계질서를 불변하는 신의 질서라고 주장하는 종교적 세계관과 아주 친화적이다. 태극기부대를 보라! 윤석열 같은 수구적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개혁적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약간은 수정될 수 있지만 현존 질서의 근본원리는 보편적인 것으로서 변경될 수 없다고 믿는 점에서 수구보수와 다르지 않다.

유물론 가운데 다른 한 부류는 세계는 부단히 변한다는 철학이다. 그러나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생각하는 유물론 안에서도 여러 부류가 있다. 세계는 양적·점진적으로만 변화하고 질적·급진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개량주의 철학, 세계는 급진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 변화는 인간의 목적의식적 실천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구조주의 철학 등이 있다. 그 대척점에 사회와 역사의 변화·발전은 사회구조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조건으로 하지만 결국 인간의 의식적·의지적 실천이 만들어 내며, 그 변화는 양적·점진적 변화만 아니라 질적·급진적 변화 즉 변혁과 혁명을 수반한다는 혁명적 유물론이 있다.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한국 노동운동의 철학은 무엇인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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