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공공병원의 회복기 예산 증액을 국회에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공공운수노조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코로나19 회복기 예산이 올해 대비 98.7%나 삭감됐다”며 “국회가 공공병원 회복기 예산을 충분히 확충하라”고 촉구했다.

코로나 병상, 공공병원이 92% … 의료손실 확대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하고, 입원 중인 환자들을 소개한 뒤 코로나19 치료에 전념하도록 했다. 이 결과 2020년 3월 전체 감염병 전담병상 중 81.2%를 공공병원이 담당했다. 이 비중은 2021년 92%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과정에서 발생한 공공병원의 손실을 보상하는 회복기 지원을 실시했으나 단기지원에 그쳐 현재 많은 공공병원이 월급을 지연지급하는 등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가 공공의료 붕괴를 방조하고 의료 민영화에 나선다고 비판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대기업·부자감세와 복지긴축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국민의 삶을 위기에 빠뜨렸다”며 “공공병원 지원예산은 9천405억원 삭감하고 비대면진료와 의료데이터 민간활용 같은 의료 민영화 예산은 크게 늘린 공공의료 포기, 의료 공공성 파괴 예산을 편성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 위중증 환자 내치듯 전담병원 내치는 정부”

코로나19 환자들은 정부의 지원 중단이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와 보호자를 파탄으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조수진 코로나19위중증환자보호자모임 활동가는 “코로나19 전담병원 보건의료 인력을 갈아 넣고 그 고통을 나몰라라하는 정부 행태는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대하던 정부 태도와 닮았다”며 “정부는 병상이 부족하자 중환자실의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내쫓고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치료비 폭탄을 떠넘기면서 기저질환 운운하며 나몰라라 했다”고 지적했다. 조 활동가는 “의료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그 출발은 공공병원에 대한 대폭 지원”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회복기 지원 중단이 초래한 공공병원 고사 위기는 코로나19 환자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참가자들은 “2025년까지 예상되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의료손실 규모가 2005~2019년 15년간 의료손실 누계액보다 크다”며 “당장 내년부터 지원금을 전액삭감하면 공공병원을 주료 이용하는 사람과 공공병원 외에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박탈이자 공공병원 죽이기”라고 입을 모았다.

소아청소년과 폐업 5년간 660곳 “공공병원 확대해야”

공공병원의 위기는 의사수가 태부족한 소아청소년 응급치료에 치명적이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한국에는 중증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가 413곳에 달함에도 소아청소년의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며 “대형 대학병원 50곳 중 28곳이 내년도 소아청소년 전문의를 확보하지 못했고,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가 660곳에 달하고 전문의 합격자가 172명에 그치는 현실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활동가는 “수익이 연간 수천억 원대라는 종합병원마저 당직의가 없어서 소아응급환자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양육자가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느냐”며 “공공병원 확대가 아니면 돈 안 되는 환자를 내치는 의료관행을 탈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 정부는 2021년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와 9·2 노정합의를 체결했지만 이행하지 않고 있다. 나순자 위원장은 “노정합의 당시 노정은 전국 공공병원 6곳을 신설하기로 국민 앞에 합의했으나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의료기관 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공병원이 온몸으로 코로나19에 맞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켰지만 토사구팽 당하는 상황에서 다시 팬데믹이 온다면 누가 국민을 지킬 것이냐”고 따졌다.

노조는 정부와 국회에 회복기 예산 3천500억원 편성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이날로 15일째 진행하고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만약 국회가 회복기 예산을 충분히 증액해 편성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심판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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