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필자가 아는 지인은 2011년 한 자동차공장의 생산직 협력업체 노동자로 입사해 2019년 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2022년 4월25일 ‘좌측 어깨관절와순 파열’로 산재신청을 하기까지 조립공정에서 일한 노동자다. 자동차공장 입사 전 건설현장, 특히 토목·건축 노동자로서 10여 년이 넘도록 일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어깨부담 작업이 아니고, 상병이 보이지 않는다며 불승인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도 기각했다. 하지만 불승인 결정 내용을 검토한 결과, 공단에서 업무부담 작업에 대해 현장조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회사의 어깨 부담작업이 아니라는 주장만을 반영했고, 과거 건설현장과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작업 이력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3차 의료기관에서 다시 진단받은 상병 진단서를 제출해 결국 산재승인을 받게 됐다. 산재신청을 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한국에서 근골격계질환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심지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이 정도라면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의 산재신청과 승인과정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산재 나이롱환자’ 급증으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센다며 이른바 ‘산재 카르텔’을 척결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고 보수 언론매체에서 덩달아 ‘산재 카르텔’을 운운하며 보도한 내용을 사실확인은커녕 그대로 언급했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고 생명을 잃은 노동자들, 그의 가족과 동료들을 위로하고 지원하진 못할망정 마치 범죄자처럼, 세금도둑처럼 취급하며 모욕을 줬다.

정부는 21일 노동안전보건단체와 민주노총이 긴급하게 개최한 ‘나는 나이롱환자가 아니다’ 증언대회를 통해서 산재 노동자와 노동조합, 유족이 제기한 문제와 애로점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전 정부에서 만들어진 제도라며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보다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국민을 위한 ‘진짜 정부’의 역할이다.

최근 산재보험을 흔드는 정부 행위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추정의 원칙’은 산재승인 기간을 단축해 제대로 요양받고 복귀하게끔 하는 제도다. 오히려 추정의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고 지금의 협소한 적용대상을 확대해 산재노동자 치료기간을 줄인다면 산재보험 재정에 도움이 된다. 1년에 500건만이 인정되고 있는 지금, 절차 간소화를 통해 빠르게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둘째, 어렵고 힘든 산재승인 절차와 비교해 인정 후 요양과 복귀를 위한 재활은 방치한 채 운영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휴업급여 지급을 위해서 병원 진료 여부만 확인하고 있다. 실제로 환자에게 맞는 치료가 되고 있는지, 복귀를 위한 적확하고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는 관심 밖이다. 산재보험 취지에 맞는 운영을 위해서라도 공단과 노동부는 운영을 감사하고 지원해야 한다.

셋째, 부실한 산재보험 기금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기금 적립금이 20조원을 넘어서자, 산재 발생이 적다는 이유로 2022년에만 기업에게 7천500억원 규모의 산재보험료를 할인했다. 이 중 1천명 이상 기업이나 공사금액 2천억원 이상 건설기업이 받은 할인금액만 3천400억원이다. 매년 2천명 이상 사망하고 1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는 현실에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과 정책으로 산재를 예방한다면 오히려 산재보험기금 재정은 더욱 안정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재 카르텔’ ‘나이롱환자’라는 모욕적인 단어로 산재노동자를 폄훼하고 탄압을 부추기는 정부의 반노동자적인 태도를 즉각 중단해야한다. 오히려 절차를 무시하고 사업주 의견만을 반영해 불승인을 빈발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재노동자에게 산재은폐를 강요하고 불이익을 남발하는 사업주가 ‘산재카르텔’이며 척결할 대상이지 않을까?

우리는 나이롱 환자가 아니다. 우리는 아프고 싶지 않으며 아프면 제대로 치료받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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