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조가 상급단체에 새롭게 가입할 경우 규약에 연합단체 가입·탈퇴에 관해 특별히 의결정족수 규정을 정하지 않았다면 출석조합원 ‘과반의 찬성’만으로 의결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6조2항은 연합(상급)단체 설립·가입·탈퇴시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규약 변경과 달리 ‘특별의결정족수(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3분의 2 이상 찬성)’를 연합단체 변경의 필요 사항으로 정하고 있지 않아 그동안 해석에 논란이 있었다. 하급심에서 엇갈렸던 ‘의결정족수 충족’ 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공무원노조, 공노총 가입 과정서 ‘갈등’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부산공무원노조(위원장 김명수) 조합원 5명이 노조를 상대로 낸 총회의결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조합원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 제기 5년4개월 만이다. 대법원 심리만 4년이 걸렸다.

사건은 2018년 부산공무원노조가 상급단체 가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노조는 그해 6월 18~19일 총투표를 실시해 전체 조합원 3천696명 중 77%가 투표에 참여했고, 55% 찬성으로 공노총 가입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대의원대회를 거쳐 같은해 7월16일 규약에는 ‘연합단체로 공노총과 광역연맹으로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그런데 조합원 일부가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으며 2018년 7월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법은 노조 규약에 ‘소속된 연합단체가 있는 경우 그 명칭’을 기재하도록 정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연합단체 가입을 의결하는 것은 ‘규약 변경’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노조법(16조2항 단서)상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조합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하는 규약 변경과 다르게 과반수 찬성(일반의결정족수)만으로 공노총 가입을 의결해 잘못됐다는 취지다. 당시 규약 제·개정은 노조 규약상 3분의 2 찬성으로 하도록 정하도록 했다.

‘규약 변경’ 해당? 법원 “일반결의 사항 해석 합리”

쟁점은 연합단체 가입 의결에 ‘특별의결정족수’가 필요한지였다. 1심은 노조법 조항을 ‘일반결의’ 사항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조합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노조법이 규약의 필수적 기재사항으로 정한 항목에 대해서는 규약의 개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됨에도 그중 일부만을 총회의 특별결의 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연합단체의 설립·가입·탈퇴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일반결의 사항으로 보는 것이 법률의 문언적·체계적 해석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조합원측은 2012년 7월 서울고법 판결을 근거로 연합단체 가입 사항은 ‘규약 제정·변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 54명은 2011년 노조를 상대로 총회의결 무효 소송을 낸 바 있다. 당시 서울지하철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국민노총에 가입하기로 의결했다. 1·2심은 연합단체 변경은 규약 변경에 해당한다며 특별의결정족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 1심 재판부는 성격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서울지하철노조 판결은) 규약에 소속된 연합단체 명칭이 기재됐고, 소속 연합단체를 탈퇴하고 새로운 연합단체에 가입하는 의결의 경우 규약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라며 “(부산공무원노조는) 소속된 연합단체가 없어 규약 변경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연합단체 ‘가입’에만 해당해 일반의결정족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2심과 대법원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노조법 해석이나 규약 변경 및 연합단체 가입·변경, 조합민주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상급단체 규약 기재’ 여부가 기준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로써 ‘연합단체 가입’에 관한 의결정족수 논란은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가입된 상급단체가 있으면 ‘특별의결’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학설이었다. 노동법실무연구회는 ‘노조법 주해’에서 소속된 연합단체가 있는 경우 명칭은 규약의 필수적 기재사항이므로 연합단체 가입·탈퇴시 규약 변경이 필요해 특별의결 사항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기준점이 세워졌다는 평가다. 가입한 상급단체 명칭이 규약에 정해졌는지로 의결정족수 적용이 갈리게 됐다. 노조를 대리한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상급단체 명칭이 규약에 있다면 상급단체 탈퇴시 실질적으로 규약 내용을 변경하는 것으로 특별의결정족수에 따라야 한다”며 “반면 규약에 없다면 상급단체에서 탈퇴하더라도 규약과 불일치가 발생할 여지가 없어 상급단체 가입은 일반의결로 족하다고 해석된다”고 말했다.

법정다툼은 끝났지만 부산공무원노조에는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다. 노조가 가입했던 광역연맹이 2021년 2월 공노총을 탈퇴해 공무원연맹으로 소속을 바꾸며 상급단체가 두 개가 됐기 때문이다. 노조는 연내 총회를 거쳐 상급단체를 정리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규약에는 공노총·광역연맹이 연합단체로 기재돼 있다. 김명수 위원장은 “이미 상급단체에 가입돼 있어 특별의결정족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법리 검토 중”이라며 “총회에서 의결을 거쳐 조합원 의사를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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