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랜 기간 어렵게 이뤄 낸 것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20일 오전 기자회견장에서 들었다. KBS에 박민 사장이 취임하자 <주진우 라이브> <최강시사> <더 라이브> 등 편성 폐지를 추진하거나 삭제했고, <9시 뉴스>의 앵커를 교체했다. 전격적으로 단행된 이 같은 사태에 언론노조 KBS본부를 자문해 온 터라 우리 사무실의 변호사·노무사들과 함께 나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부당노동행위 등 법적 대응을 밝혔다. 내 발표에 앞서 강성원 KBS본부장은 모두발언에서 이 같은 말을 했다. 노동조합이 중심이 돼 오랫동안 힘겹게 투쟁해서 이제 겨우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는데, 순식간에 망가졌다며 분노했다. 나는 부당노동행위를 발표했지만, 노조 본부장은 공정방송을 강조해서 주장했다. KBS 등 언론사 노조들을 자문해 오면서 알게 된 것인데 공정언론을 위한 투쟁이 노조활동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그런지, KBS 등 이 나라에서 방송사 노조 투쟁을 돌아보면, 임금 등 조합원의 권리 쟁취를 위한 임금·단체협상 투쟁보다 공정방송투쟁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를 주구장창 떠들어 대면서 노조활동을 자문해 온 나로서는 이런 언론노조들의 활동이 조금은 낯설다. 그런데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사측을 고소·고발하고, 노동위원회 구제신청하면서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노조 본부장이 공정방송이 무너졌다고 분노하는 것을 보고 나니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KBS에서 공정방송 위반과 부당노동행위는 별개가 아니었다.

2.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다.’ 이 나라 방송법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4조1항). 권력 등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4조2항), 이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105조1호). 그렇다면, 어떠한 권력자라도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 이 나라에서 방송편성에 규제하거나 간섭을 할 수 없어야 하는 것인데, 오늘 이 나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도 당연하다. 권력이 방송을 장악해 제 입맛대로 편성해 보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난리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법률이 분명히 금지하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일어나는가.

방송법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 방송사업자는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해서 이에 따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4조4항). 이에 따라 KBS에서는 “종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노사합의를 거쳐” ‘KBS 방송 편성규약’을 마련해 시행해 오고 있다. 이처럼 KBS에서 방송 편성규약은 법률에 따라 제정·운영되는 것으로서, 방송법에 따라 KBS에서 방송편성은 방송 편성규약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이 나라에서 방송편 성규약은 법률이 공정방송을 위해 준수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반하면 위법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사측의 행위가 편성규약을 위반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KBS 방송 편성규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KBS 방송 편성규약은 “내외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고 취재 및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걸 그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1조). 이를 위해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실무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실무자와 성실히 협의하고 설명해야 하며(6조),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방송법이 정한 제반 기준 내에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으면서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권리 등 각종 권리를 가진다(7조). KBS에서 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다. 특히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이 그러한데, 이번 사태가 일어나면서 압박을 느껴 일부 조합원들이 노조 탈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신임 사장이 취임하더니 급작스럽게 편성의 폐지를 추진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 대상편성 프로그램이 조합원이 소속된 것이다 보니 조합원이라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되는 것일 게다. KBS에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 취재와 제작 실무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에서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한다면 오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에, 즉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고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에 실무자인 조합원의 의사가 반영돼 결정되지 않고 사측이 급작스럽게 일방적으로 단행하는 것을 겪고서 이런 것이겠다.

KBS 방송 편성규약은 특히,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고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분야·지역별로 취재 및 제작 책임자와 실무자의 대표자를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운영토록 하고, 전체 편성위원회는 노사 동수로 공정방송위원회를 구성·운영토록 하고 있다(8조, 9조). 이 편성위원회에서 방송의 공정성 및 공익성 훼손의 논란이 있는 경우, 편성·보도·제작 과정에서 제작 자율성의 침해 논란이 있는 경우 등은 물론 방송업무와 관련한 각종 현안에 관해 협의하고 의견을 조정하도록 하고(10조), 자료 제출 및 출석 요구(11조), 편성규약 위반, 실무자의 자율성 침해시 시정요구 및 징계심의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15조). 이처럼 편성위원회와 공정방송위원회를 통해서 KBS에서 방송 종사자들은 대표자를 거쳐 방송 편성과 관련해 사측과 협의하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취재 및 제작 실무자로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KBS에서 편성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삭제하고, 9시 뉴스 앵커가 교체되는 등으로 자율성 침해가 논란이 되는 경우에는 편성위원회·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해서 협의하고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편성위원회·공정방송위원회는 매월 정기적으로 개최하되, 긴급한 현안이 있을시 일방이 요청하면 24시간 내에 개최하도록 하고 있다(편성규약 12조, 단체협약 25조). 이번 사태에 교섭대표노조인 언론노조 KBS본부는 사측에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하지만 24시간 내에 열려야 할 공정방송위원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KBS에서 방송 편성규약을 위반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KBS 방송 편성규약은 일부 취재 및 제작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둬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는데(16조), 오늘 KBS에서는 이와 관련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 이상이 KBS에서 공정방송을 위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방송 편성규약의 주요 내용이고, 오늘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규약 위반 행위인 것이다.

3. 이상을 통해서 보면 공정방송은 권력에 의해서 외부에서 주입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 없이 취재 및 제작해서 프로그램이 방송될 수 있도록 취재와 제작 종사자(특히 그 실무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편성규약은 바로 이를 위한 절차·제도로 마련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KBS에서 이러한 방송 편성규약은 방송법에 따라 당연하게 마련된 것이 아니다. 언론노조 KBS본부를 중심으로 공정방송을 위한 오랜 투쟁을 통해서 제정돼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KBS본부가 교섭대표노조로 지난해 3월4일 체결한 단체협약을 보면, 3장에 공정방송에 관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KBS 방송 편성규약은 공정방송에 관한 노사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단체교섭을 통해서 노사합의로 공정방송을 위해서 편성규약을 제정해서 운영하는 것이기에 앞에서 본 KBS에서 방송 편성규약 위반행위는 공정방송에 관한 단체협약 위반이 된다. 거기다 KBS본부 조합원이 취재 및 제작 실무자로 종사하는 편성 프로그램을 폐지·삭제하고, 앵커를 교체하는 것과 결부돼 사측의 행위가 노조활동에 대한 불이익 내지 지배·개입으로 의심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KBS에서 공정방송은 노동조합이 중심으로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그 결과가 공정방송에 관한 단체협약이고, 방송 편성규약이다. 그래서 편성규약을 위반한 사측의 행위는 교섭대표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부당노동행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부당노동행위 중단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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