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1.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정부와 재계가 함께 쓰는 신작 공상소설이 시중에 떠돈다. 그것도 아주 재미없는 내용으로. 먼저 이들은 개정 노조법 2·3조의 ‘실질적 지배력’이 모호한 개념으로서 교섭에 응해야 할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등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사용자는 불법파업에 사실상 손해배상청구가 불가능하고, 수백, 수천 개의 하청업체를 가진 재벌·대기업 원청은 1년 내내 교섭과 파업으로 몸살을 앓아 결국 기업경영과 국가경제가 파탄난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의 카드뉴스를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과연 이런 주장은 타당한가.

2. ‘사용자’ 정의 개정을 보자. ‘사용자’ 정의 개정에 담긴 소위 ‘실질적 지배력’ 개념은 지금까지 축적된 법원의 판례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례의 문구를 그대로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 판(정)례는 모두 이보다 훨씬 앞선 노동법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에 근거한다. 심지어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 개념은 이미 죄형법정주의가 지배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사건에 관한 대법원 형사 판결에서도 적용됐다. 충분한 해석의 근거를 가진 ‘사용자’ 정의 개정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법률의 정의 문구가 추상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호하니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법률의 추상적인 정의 문구와 이를 기초로 한 법률체계는 성립할 수 없다. 정부와 재계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손해배상청구 불가 주장을 보자. 사실 이번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용자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제한 내용은 대부분 반영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쟁의행위 등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자신의 행위만큼만 책임진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일부 반영됐을 뿐이다. 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정확히 부합할 뿐만 아니라 최근 현대자동차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므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개정 노조법을 시행해도 사용자는 정당성 없는 쟁의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정부와 재계는 무슨 근거로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파업천국론’ ‘경제파탄론’을 보자. 정부와 재계는 재벌·대기업의 하청노조가 개별적으로 원청인 재벌·대기업을 상대로 교섭하고 파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지금도 하청노동자들은 하나의 노조로 뭉쳐서 원청에게 교섭을 요구할 뿐이다. 그래야 교섭력이 확보된다.

하청노조는 파업 못 해 안달하는 집단이 아니다. 재벌·대기업 등 원청이 합리적인 태도로 대화와 교섭에 나선다면 임금 손실을 감내하며 굳이 파업에 나설 이유가 없다. 만약 재벌·대기업 원청이 하청노조의 교섭에 응하고 싶지 않다면 하청노동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권한을 행사해 이윤을 취하면서도 정작 대화와 교섭은 하기 싫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태도 아닌가.

3. 정부와 장관은 개인이 아니라 공적 기관이다. 정책과 제도로 말할 뿐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객관적이어야 한다. 국민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 노조법에 대한 노동부와 이정식 장관의 태도는 이러한 기준에서 한참 벗어났다. 오히려 그릇된 주장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재벌·대기업의 노무부’를 자처하는 꼴이다.

4. 우리는 주 5일제 도입과정에서 재계가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라는 선동을 일삼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의 주장과 달리 주 5일제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작금의 정부와 재계도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주장을 일삼고 있다. 제발 선동이 아닌 토론을 하자.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정식 장관과 ‘끝장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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