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 실장

공기업 한국전력 자회사 한전KDN과 같은 공기업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YTN 지분 30.95%를 지난달 23일 유진그룹에 넘겼다. 이렇게 26년 동안 공적 소유를 이어온 보도전문채널 YTN이 하루아침에 민간회사로 넘어갔다. 유진그룹은 건설자재와 금융·엔터테인먼트 등 50여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78위 기업이다.

한겨레는 매각 나흘 뒤 “언론 민영화가 이렇게 쉽다고?”라는 기사에서 “공영 언론 민영화에 사회적 숙의 과정이 빠졌다”고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노조 목소리를 담았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공기업 지분 매각에 불법이 의심된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한전KDN은 지난해엔 수익성을 고려해 YTN 주식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견을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공공기관 혁신TF에 제출했지만 산자부 TF는 매각을 권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진그룹 회장이 과거 특수부 검사에게 내사 무마용 뇌물을 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소유주 자격 문제를 언급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유진그룹 계열사 유진투자증권이 주가조작과 불법 주식 리딩방 논란에 휩싸여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YTN 민영화는 언론계 주변에서만 시끄러울 뿐이다. 얼마 전 서울신문이 건설회사 호반그룹에 넘어갈 때와 비슷하다.

그동안 YTN 안에서 공익적 가치를 지키려 헌신한 많은 언론 노동자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침묵하는 시민들도 이유는 있다. 어차피 모든 언론이 자본에 종속된 마당에 소유구조가 대수냐는 자괴감도 한몫했다. 한편으론 그동안 YTN이 얼마나 공적 기능을 수행했는지도 되돌아 본다.

2002년 2~4월까지 38일간 이어진 발전노조 파업도 ‘전력 민영화’를 저지하려는 공익적 투쟁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착실하게 전력 민영화의 초석을 다져 온 대한민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에 와서 한국전력에서 발전 5사를 분리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발전 5사 가운데 1개를 2002년 상반기에 민간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력 민영화에 박차를 가했다.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전력공기업을 민간에 팔려고 하면서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2002년 발전파업이 그렇게 강하게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리라곤 아무도 몰랐다.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 5사 노동자는 노조 출범이 6개월에 불과해 조직력이 매우 부실했다. 당시 발전노조는 민주노총에도 새내기 가입노조였다. 발전노조·철도노조·가스공사노조는 2001년 10월부터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위원회’을 구성해 동시파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가스공사노조는 2002년 2월25일 디데이에 맞춰 파업에 동참하지 못했다. 철도노조는 발전노조와 함께 파업에 돌입했다가 2월27일 타결해 업무에 복귀했다. 혼자 남은 신생 발전노조 파업은 장기화됐다.

파업 첫날 서울대에 모인 발전노조 조합원들도, 민주노총 간부들도 모두 놀랐다. 5천700여 조합원 중 5천300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정부에 비해 홍보력이 취약한 민주노총은 “전기 같은 중요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면 안 된다”는 매우 단순한 호소밖에 못했지만, 시민들은 공감했다. 공안당국은 파업 사흘을 못 넘긴다고 예측했지만 여론을 등에 업고 장장 38일을 버텼다.

당시 나는 언론노조 정책국장이었는데, 손낙구 당시 민주노총 대변인에게 심한 항의전화를 받았다. 웬만한 위기도 늘 웃으며 건너가는 손 대변인은 꼭지가 돌아 있었다. “YTN 화면, 한 번 보라”고 일갈했다. 전화를 끊고 YTN 화면을 봤다. 발전회사의 업무복귀 명령서가 화면 아래쪽에 한 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전력이 소유한 YTN 지분은 이렇게 발전노조 파업을 깨는 데 활용됐다.

긴 파업 끝에 복귀한 발전노동자들은 348명이 해임됐다. 각서와 감사, 가압류, 고소고발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그러나 발전노동자들은 국가기간산업인 발전 민영화를 끝끝내 저지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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