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길목에서 투쟁 중인 이주노동자들.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농성투쟁 아카이브모임

2003년 11월1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들머리에 2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모였다. ‘코리안 드림’을 꾼 색색의 청년들. 전국적으로는 1천여명이 결집했다. 그해 7월 고용허가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는 ‘불법체류자’에게 자진출국을 권유했다. 강제추방이 뒤따랐으니 권유라기보다는 압박이었다. 당시 전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개국 12만명. 사실상 한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명동성당에 모인 이들은 천막을 차렸다. 이렇게 시작된 농성은 해를 넘겨 380일을 끌었다. 그 사이 수없이 많은 이들이 추방됐고 죽었다. 사라져간 이들의 이름이 오늘날 기록으로 남았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성 투쟁을 기록한 전시회 ‘존재선언’이 개막했다. 복지관 지하 1층부터 1층까지 가득 메운 사진들은 당시 투쟁 현장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380일 농성 역사 담긴 전시

‘존재선언: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의 기록 2003~2004’는 4개 세션으로 구성했다. 지하 1층 1세션에는 ‘해방구’라는 주제로 전시가 펼쳐진다. 아트 디렉터 추유선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땀’을 상징하는 소금산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이 지나온 역사를 흐르듯 표현한 구조물이 놓여있다. 1부터 380까지 색색깔로 적힌 숫자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380일간 농성을 상징한다. 벽에는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이 노동자, 인간으로서의 존재선언이 담겨 있다.

곳곳에 걸린 플랜카드는 20년전에 쓰였던 것과 지금 쓰인 것이 나란히 걸렸다. 구호는 다른듯 닮았다. 20년전 주로 외쳤던 구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이었다. ‘Action Action Direct Action!’ ‘Give us working visa’ 지금 즉각 행동할 것을 촉구하며 비자 발급을 요구했다면 현재는 고용허가제를 기반으로 한 ‘Free job change!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 주된 구호다.

한켠에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플랜카드도 놓여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이주 여성노동자 속헹(사망당시 30세)씨가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뒤 촉발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 요구는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전시회 현장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불렀던 노래를 파드마(pAdma)밴드가 재해석해 만든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가 결성한 파드마 밴드는 차별과 국경을 넘어 지구별 주민의 화합을 이야기해왔다. 집회 영상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20년전, 그리고 지금 이주노동자들이 꿈꾸는 세상이 담긴듯 하다.

▲ 2004년 2월8일 명동성당 들머리.명동성당 이주노동자농성투쟁 아카이브모임
▲ 2004년 2월8일 명동성당 들머리.명동성당 이주노동자농성투쟁 아카이브모임

색 바랜 사진 속 이주노동자의 외침

1층에는 2, 3, 4세션을 한데 모았다. 지하 1층에서부터 1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농성장 풍경이 그려진다. 색이 바랜 사진 속에는 사계절 투쟁을 이어온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농성 참가자들은 이주노조 전신으로 2001년 5월 설립된 평등노조 이주노조지부라는 이름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있다. ‘노동비자쟁취’라는 바람이 새겨진 두건을 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사진도 보인다.

2003년 11월15일 농성을 시작하고 이틀 뒤인 11월17일 경찰과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는 대대적인 단속 및 강제송환을 시작했다. 이후 2004년 1월초 정부는 1월말까지 자진출국 기간을 연장하고 자진출국 시 재입국을 보장하기로 했다. 명동성당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있던 농성단은 이후 해산했지만 명동성당 농성단은 재입국 보장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국 거부 선언을 했다. 이후 강제송환이 계속되고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서 점차 농성 인원은 줄어갔다. 2004년 11월28일 명동성당 농성단은 380일의 농성을 마치는 해단식을 열었고 2005년 서울경인지역 이주노조가 결성된 뒤 2015년 8월 이주노조가 설립필증을 받으면서 합법화된다. 1층 전시장은 농성장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준다. 당시 4개동의 천막을 1개로 축소해 당시 이주노동자들이 남기고 간 물건과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유인물, 낙서, 보도자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17일까지 열린다. 전시 마지막 날인 17일 오후 2시 강북노동자복지관 5층 강당에서는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한 대회 및 농성단 감사패 전달식이 열릴 예정이다. 다음달 20일부터 21일까지는 추방당하거나 귀환한 이주노동자들이 다시 만나는 리유니온(reunion)행사가 예정돼 있다. 농성에 참여했던 이주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네팔에서 30여명, 방글라데시 10여명, 한국에서 10명씩 네팔 카트만두에서 다시 만난다.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아카이브 홈페이지(mw-archive.tistory.com)에 접속하면 당시에 배포된 각종 서신과 선전물을 볼 수 있다. 17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강북노동자복지관 201호에서 비판사회학회 콜로키움 프로그램으로 ‘연대의 토크, 한국사회 이주노동자운동의 역사와 과제’라는 발표회가 열린다.

▲ 2004년 6월경 명동성당 천막농성장.명동성당 이주노동자농성투쟁 아카이브모임
▲ 2004년 6월경 명동성당 천막농성장.명동성당 이주노동자농성투쟁 아카이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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