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공기청정기 같은 대여제품을 점검하는 방문점검원들에게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에 7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사진은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가 2022년 11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명지를  고용노동부에 전달하는 모습. <어고은 기자>
정수기·공기청정기 같은 대여제품을 점검하는 방문점검원들에게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에 7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사진은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가 2022년 11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명지를  고용노동부에 전달하는 모습. <어고은 기자>

고용노동부가 노무제공자의 공정한 계약 체결 관행을 확산하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제작·배포한다고 16일 밝혔다. 정부가 노무제공자의 노동자성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고 권리를 보호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노동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가전통신방문점검판매 직종 표준계약서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코웨이·SK매직 노사가 참여했다.

노동부는 먼저 노무제공자 대상 공통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종별 표준계약서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직종별 표준계약서는 가전통신방문점검판매직종, 온라이마트배송직종에 이어 순차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가전통신방문점검판매직종 표준계약서가 완성되면 공통 표준계약서와 함께 공개한다.

직종별 표준계약서 마련은 노동계의 요구이기도 하다. 가전통신서비스노조는 지난 6월 사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위임계약서에 따라 일하면서 업무상 비용 전가, 일감 축소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직종별 표준계약서 마련을 요구하는 서명 1천장을 노동부에 전달했다.

노무제공자 표준계약서 마련 움직임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회사와 위임·위탁계약을 맺는 노무제공자를 노동자와 사업주 중 어디에 가깝게 볼 것인지에 따라 표준계약서에 담길 내용이 달라진다.

가령 가전통신서비스노조가 만든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표준계약서의 “계약기간, 업무내용, 수수료 액수, 수수료 지급 방식과 같은 위수탁 계약의 핵심적인 부분은 위·수탁자 간의 상호 합의에 의해서만 변경할 수 있으며 위 상호합의가 없는 계약변경은 무효로 한다”는 문구는 노동자의 협상권을 보장한 내용이다. 노동자(수탁자)쪽은 고용과 처우 안정을 위해 원하지만 사용자(위탁자)쪽은 반대할 수 있다. 정부가 노사의 의견을 어떻게 조율해 표준계약서에 반영할 것인지 관건이다.

노조 관계자는 “고용안정 부분도 쟁점”이라며 “사측이 사실상 해고 수준에 가까운 일감을 부당하게 조율할 때 이런 것을 막아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표준계약서로 노무제공자의 지위를 향상하려면 비용구조가 바뀌어야 하는데, 정부가 2차 노동시장을 대했던 태도를 보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기술적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은 (노무제공자와 수탁자의) 불균형한 상태를 고착화하는 데 쓰일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노무제공자 표준계약서 마련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문제를 노동시장 이중구조와도 연결 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만든 표준계약서가 20종이 있지만 현재도 표준계약조차 작성하지 않는 곳이 있어 필요하다”면서도 “근로자성이 높은 업종과 직종이 (프리랜서로) 오분류되지 않게 (표준계약서 적용) 검토 후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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