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지 53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인 남재영 목사님이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공포를 촉구하는 단식기도’를 시작했다. 곡기를 끊으며 기도를 시작한 동화면세점 앞은 경찰로 가득했다. 그들은 기도회를 위해 물품을 내리는 것을 가로막았고 추운 날 맨바닥에서 노숙하는 성직자가 몸을 덮으려 했던 비닐을 빼앗았다. 경찰은 기도회에 참석하려면 가방을 열어 보여줘야 한다고 강요했다. 가방 열기를 거부한 다른 성직자는 끝내 출입이 막혔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난무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폭력은 낯익다. 이미 수십 년간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자행됐다. ‘불법파견을 시정하기 위해 진짜 사장과 교섭하자’며 파업한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기업은 24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정부가 기업의 불법을 옹호한 결과물이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삭감당한 임금을 돌려놓으라고 파업을 한 후 평생 듣도 보도 못한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당했다.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며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떨어뜨리거나 거리로 내몰 때, 그 무책임과 부당노동행위를 사실상 지원해 왔던 정부의 행위도 폭력이다.

국가폭력은 때로는 ‘법과 원칙’의 이름으로, 때로는 이데올로기 공세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행사된다. 건설노조 간부였던 양회동 열사는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억울하고 창피합니다”라고 유서를 남겼다. 정부는 8시간 노동을 정착시키고, 위험한 현장을 안전하게 바꿨던 건설노조의 현장 활동을 공갈이고 협박이라고 주장했다. 하루에 두 명씩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건설현장을 바꿀 의지조차 없었던 정부가, 그 현장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에게 ‘건폭’이라 이름 씌우고 구속시켰다. 정부의 이런 폭력이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국가폭력은 비정규 노동자에게 물리적이고 직접적으로 가해졌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포스코 하청업체인 ㈜포운 노사 임금협약 체결과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며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경찰은 진압봉으로 사무처장을 구타하며 끌어내렸다. 그리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구속했다. 현재는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항거할 수 없는 노동자에게 진압봉을 내려쳐서 피투성이로 만든 그 장면에 많은 이들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공권력’ 앞에 비정규 노동자의 파업이나 투쟁은 진압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노동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을 뒷받침한 것이 바로 개정 전 노조법이었다. 정부는 노조법상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없다면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었다. 노조법에 따르면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만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내몰고 폭력 진압했다. 바로 그 ‘불법’의 이름으로 기업은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는 고공농성을 하고, 단식하고, 오체투지를 하는 등 극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 투쟁을 다시 불법으로 규정해 탄압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를 만큼 억울하고 비통했던 노동자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노동자에게 수많은 폭력을 자행한 재벌 대기업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그렇게도 비통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개정 노조법에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11월13일 노조법 2·3조 공포 촉구 단식기도회장을 둘러싼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막지 못했으나, 비정규 노동자, 그리고 손해배상으로 고통당한 노동자가 쟁취한 작은 권리조차 ‘거부권 행사’로 또다시 짓밟으려는 이런 폭력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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