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지난해 8월5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파이낸스센터 과기정통부 기자실에서 '다누리 발사후 달 전이궤도 진입 성공'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지난해 8월5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파이낸스센터 과기정통부 기자실에서 '다누리 발사후 달 전이궤도 진입 성공'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국내 첫 달 탐사선인 ‘다누리’를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소속 연구원들에게 밀린 연구수당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중 ‘연구수당’의 임금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정부가 R&D(연구개발) 예산을 33년 만에 대폭 삭감한 가운데 나온 사법부 판단이다. R&D 예산을 삭감하려는 정부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31조1천억원)보다 5조2천억원(16.6%) 줄어든 29조5천억원으로 편성해 과학계의 반발을 불렀다.

‘세계 7번째 달 탐사’ 영광의 그늘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민사5-2부(재판장 신순영 부장판사)는 항우연 달 탐사선 개발 연구원 A씨 등 16명이 항우연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14일 항우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항우연은 A씨 등에게 약 1억3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법정 다툼은 ‘다누리’의 연구개발 일정이 연기되면서 촉발됐다. 항우연은 2016~2018년 ‘시험용 달 궤도선 및 달 탐사 2단계 선행기술 개발’을 맡았다. 개발예산만 1천9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중간에 다누리 중량이 계획보다 증가해 연료가 부족한 문제가 생겼다. 전문가 점검위원회에서 발사 목표 시기가 애초 2018년에서 2020년으로 연장됐다. 2019년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그해 9월까지 점검을 거쳐 중량·궤도와 발사 일정을 변경하기로 의결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5일 다누리가 발사돼 같은해 12월17일 594만 킬로미터의 항행 끝에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 됐다. 다누리는 달 표면을 관측하고 미국 항공우주국과 향후 달 유인 탐사에 필요한 데이터를 취득하는 데 협력했다. 달 착륙선 개발 본격화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연구원 163명은 2019년 1월부터 5월까지의 연구수당을 받지 못했다.

연구개발 일정 밀리자 수당 삭감, 법원 “고정적 지급”

달 탐사 개발사업은 2016~2018년 연구수당을 인건비의 20% 범위 안에서 반영해 왔다. 항우연도 연구수당 12개월분을 모두 책정했다가 갑자기 2019년 6월께 1~5월의 인건비·간접비·연구수당을 모두 삭감했다. 삭감된 연구수당만 1억4천만원에 달했다. 인건비도 약 7억원이 깎였다. 외부 점검평가단의 점검이 진행되고 있어 사실상 연구가 중단됐다는 이유다.

연구원 중 18명은 삭감된 연구수당 중 약 1억300만원을 지급하라며 2020년 4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연구수당을 임금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A씨 등은 “연구수당은 인건비에 연동돼 고정적으로 지급되므로 임금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개발사업이 2019년 1~5월 공식적으로 중단된 적도 없어 연구수당을 삭감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항우연측은 연구수당이 보상금·장려금 성격에 불과하고, 달 탐사 개발사업 추진위원회가 연구활동을 중단된 것으로 판단했으므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맞섰다.

1심은 연구원들 손을 들어줬다. 이미 2017~2018년, 2019년 6~12월까지 연구수당이 지급됐으므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근로의 대가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항우연이 연구수당 지급을 제외하는 시행계획을 마련해 추진위원회 결의를 받았고 점검평가단의 최종결과보고 등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연구수당) 지급의무를 면제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급기준에 따라 중간등급인 B등급을 기준으로 연구수당을 계산해야 한다고 봤다. 2심은 9차례 재판 끝에 항우연 항소를 전부 기각했다. 노사는 △연구개발 중단 여부 △연차별 협약 체결 여부 △인건비 20%의 범위 내 비율을 정할 재량이 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정부 기조에 경종 “예산 감축은 곧 인건비 삭감”

이번 판결은 정부의 R&D 예산감축 기조에 배치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과거 우주기술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달 2일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 비전 선포식’에서는 “연구자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돈이 얼마나 들던 지 뒷받침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과기부는 내년도 우주사업 13개 중 8개의 예산을 삭감했다. 항우연도 전년 대비 16% 줄어든 1천1억6천500만원을 내년 연구운영비로 책정받았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원회에서 내년도 R&D 예산안을 정부안보다 8천억원 늘려 단독으로 의결 처리했다.

R&D 예산 삭감은 연구수당 미지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원들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인건비를 연구개발 과제에서 충당하므로, 윤석열 정부에서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곧 연구원의 인건비와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을 통해 아무리 국가가 관리하는 연구과제라 하더라도 임금 성격의 연구수당은 정식 사업 중단 결정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삭감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최근 정부의 예산 삭감에도 규범적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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