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권 보건의료노조 법규부장

‘굳이 사회나 공동체 걱정은 하고 싶지도 않아.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걸.’ 이따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듣게 되는 말들이다. 2023년을 살고 있는 청년 입장에서 미래에 대한 별다른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학창 시절 내내 경쟁하고, 취업하느라 경쟁하고, 직장에서도 경쟁하느라 지쳤다. 이 나라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먹고사느라, 내 몸 하나 쉴 집 하나 챙기기 바쁘다. 사회에 대한 걱정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사회공동체에 관한 논의는 ‘먹고살기즘’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에 이르지조차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정부나 기업은 이른바 ‘능력주의’ 담론, 노동조합에 대한 여러 공격 등을 통해 정규직·세대·학벌·성적인 차이를 정당화하며 그렇지 않아도 파편화된 개인들을 더욱 고립된 개인으로 만들고 있지 싶다.

통상 노동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헌법 11조1항에 따른 평등원칙과 이를 구체화한 노동관계법령의 위반을 이유로 한 ‘차별 문제’가 자주 회자된다. 기간제 교원이라는 이유로, 공무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국가 소속 행정기관들이 차별 처우를 행한 사안들이고 부당함을 참다못해 이를 해소하고자 당사자들이 ‘법의 문’을 두드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법부는 이른바 ‘법적 안정성 확보’라는 지극히 보수적인 견지에서 사안을 바라봐 당사자들을 내박쳐 둔다. 최근 서울고법은 기간제 교원은 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하지 않아 정규교원과 달리 교육공무원법상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무기계약직 국도관리원들은 공법상 특별근무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토교통부 공무원들과 다른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아주 간단하게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벽을 만들어 버렸다. 문제는 이러한 판결이 단순히 사안에 대한 판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정부)가 행하는 부당한 차별을 옹호하는 구실을 할뿐더러 당사자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소위 정규직이나 안정된 일자리에 취직할 노력만을 기울이며 경쟁을 더욱 심화하는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생각건대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변화는 정치·경제적 큰 파동과 맥을 함께해 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더불어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과 함께 ‘일터 내 민주성 확보’를 위한 비정규직, 직장내 괴롭힘, 차별 금지 등과 관련한 각종 제도와 정책이 논의되고 입안되기도 했다. 병원 사업장들의 단체행동(파업) 역시 한때 직권중재 제도로 말미암아 사실상 금지됐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과 압력으로 말미암아 2007년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제도가 개정되며 단체행동권을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주로 하는 일이 법과 관련된 사항이 많지만 사람들이 사는 실제 삶을 바꾸어 내는 동력은 단순한 법과 제도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살아 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와 목소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무리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법도 사실 사람들의 삶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발명된 ‘도구’에 불과하며, 대개 현대인들이 유독 집착하게 되는 돈(화폐)이라는 것도 더 편한 거래를 위해 고안된 ‘도구’에 불과하다. 요컨대 이러한 도구들은 오늘날을 살아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대에 맞게 쓰여야지, 그저 기존의 질서만을 보위하기 위한 장치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공무직-공무원 간 차별’과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중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보충의견은 “물통이 담을 수 있는 양은 가장 낮은 벽 부분의 높이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를 그대로 둔 채 높은 부분을 아무리 높여 봐야 물통이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은 하나도 증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벽 부분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노동법”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차가운 현실을 함께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아무리 각자도생의 시절이 온 것 같고 잔뜩 흐려진 하늘 아래 있는 것 같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항상 대안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구성원들의 행동을 통해 도출돼 왔다. 사회 변화에 냉소적 시선을 보내는 또래 친구들의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함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스스로라는 사실이라는 점을 환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