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주말 서울 서대문 네거리와 여의도 광장에서 두 개의 노동자대회가 있었다. 하나는 민주노총이 주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노총이 주최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왜 날씨도 쌀쌀한 이 때에 노동자대회를 갖는가? 53년 전 11월13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서 분신 항거한 전태일 동지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필자는 전태일 정신이 지금 노동운동 속에서 올곧게 계승되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53년 전 전태일 동지의 죽음을 접하고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투쟁했던, 투쟁해 온 한 사람으로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곰곰이 그 원인을 생각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전태일 정신에 대한 협소한 이해가 큰 요인의 하나라고 본다.

첫째, 노동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풀빵정신’으로 협소하게 가둬 왔다. 차비를 아껴서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주고 자신은 동대문에서 도봉산까지 걸어 간 그의 정신은 참으로 훌륭한 인도주의 정신이다. 그러나 전태일이 그런 ‘따뜻한’ 가슴으로 어린 시다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데 그쳤다면 그는 노동운동의 횃불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정신은 거기에서 나아가 ‘뜨거운’ 가슴으로 분노하고 마침내 하나뿐인 자신의 육신을 불사른 가열찬 투쟁정신이다. 이 가열찬 투쟁정신은 밑바닥 인생들의 삶과 고통에 대한 ‘뜨거운’ 공감을 바탕으로,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체제에 대해 ‘뼈저린’ 각성을 했을 때 만들어진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다른 나라 노동운동에 비하면 투쟁을 곧잘 한다. 그러나 밑바닥 인생들의 고통에 뜨겁게 공감하지도, 그런 고통을 강요하는 체제에 대해 ‘뼈저린’ 각성을 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가 온건합리적 투쟁이다.

둘째, 전태일이 추구한 것은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넘어선 인간적 해방이다.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을 문제 삼았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소하게 경제적 상황만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는 그런 경제적 상황의 근본원인인 동시에 그 결과인 노동자의 인간적 상황을 더욱 문제 삼았다. 그는 첫 번째 수기의 끝에 이렇게 썼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우리 노동운동은 너무나 협소하게 노동자의 경제적 문제에 매달려 왔다. 노동해방을 기치로 하는 조류에서도 그러하다. 칼 마르크스도 제1인터내셔널 규약에서 경제적 해방이 노동운동의 목적이고 정치적 해방은 그 수단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글 안에서도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경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위의 전태일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인간인 노동자의 비인간화와 물질화, 즉 노예화다.

셋째, 전태일 정신은 체제유지가 아니라 체제를 변혁하고 혁명하는 정신이다. 전태일은 체제가 제공하는 알량한 기득권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그 기득권 자체를 없애기를 원했다. ‘바보회’를 만들어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그는 자신의 활동과 더불어 사회현실을 곰곰이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악의 근원은 사회의 지배체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회체제 안에서 기득권자가 되려고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그 사회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통찰에 도달했다. 그는 친구 원섭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 속에 뭉치지를 않고 그 뭉친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 버리겠네. 오늘 나는 여기서 내일 하루를 구하고, 내일 하루는 그 분해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일세. … 그렇게 되면 사회는 덩어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또한 부스러기란 말이 존재하지 않을 걸세.”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는 노동운동의 목표는 기득권으로의 상승이나 기득권 유지가 아니라 기득권 타파가 돼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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