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유 대표

“그동안 사각지대로 생각했다”

프리랜서 인터뷰에 참가했던 청년유니온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랜서를 사각지대 존재로 표현하면서 프리랜서의 자부심이나 긍정적 측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를 성찰했다. 인터뷰에 참가한 프리랜서들이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프리랜서를 지칭하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그의 지적에 공감했다.

일하는 시민을 비천하게 보는가,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특권을 부여하는가, 동료시민으로 존중하는가에 따라 노동을 향한 언어가 달라진다. 프리랜서를 사각지대로 보는 것은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무권리 상태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법 밖으로 밀려난 수동적 존재,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느낌도 풍긴다. 그렇다면 ‘독립 계약자’라는 표현은 독립성을 강조하는 긍정적 언어일까.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자유(free)’를 앞에 두고 있다. 뒤에 붙는 ‘랜서(lancer)’는 창(lance)을 쓰는 창기병을 의미한다. 중세의 창기병은 중요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궁수를 비롯해 일정한 수의 전투단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프리랜서는 왕이나 귀족의 군대에 속하지 않다가 계약을 통해 군대에 편제되기도 했다. 물론 요즘 프리랜서를 보고 창을 든 기사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프리랜서 소울

프리랜서에게 창기병처럼 빠르게 달리는 말과 자신을 지킬 창이 있을까. 프리랜서가 신체 기동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직업은 있지만 직장에 묶여 있지 않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들의 창은 무엇일까. 인터뷰 참가자들은 “프리랜서 스피릿(정신)이 뭐냐”는 질문에 자기 주도성, 자율성을 강조했다. 한 참가자는 그것이 프리랜서를 그만 둘 수 없게 하는 ‘커스(curse·저주)’라고 했지만, 그들은 일이 없는 보릿고개를 겪을지라도 기업에 통제받는 정규직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돈벌이보다 작업의 자유를 우선에 두는 것은 돈독 오르게 하는 자본주의를 뚫는 창일까. 돈보다 자유가 먼저인 그들은 독특한 소울(영혼)을 가진 신인류일까.

많은 프리랜서가 스스로 영업한다. 여러 사람과 친분을 맺고 광고한다. 이런 점에서 인터뷰 참가자들은 프리랜서의 사회성을 높게 봤다. 벌이를 위한 사교성을 근거로 사회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서로의 권리를 자각하고 존중하는 ‘공동체 감각으로서 사회성’과 ‘생계형 사회성’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일에 따라 수시로 팀을 이뤄 협업하는 ‘유연한 협업 경험’이 있다. 영업을 위한 이런 경험이 권리를 위한 ‘유연한 단결 능력’이 될 수 있다.

인터뷰한 프리랜서 상당수가 커뮤니티를 원했다.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커뮤니티지만, 이들은 주로 온라인 기반의 모임을 생각한다. 커뮤니티를 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돈벌이를 위한 경제적 필요가 있다. 일을 따 내려는 정보를 얻고 인맥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사회적 필요도 있다. 싼 단가나 클라이언트의 갑질 속에서 권리를 위해 뭉치고 혼자가 아니라는 소속감을 느낄 커뮤니티를 원했다.

두 종류 커뮤니티

산업사회는 취업자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기업에 소속감을 가지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기업에서 이윤을 위한 영리와 인격을 보호하는 권리는 나뉜다. 영리를 담당하는 기업은 사업체고, 인격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조는 결사체다. 결사체에 가입한 노동자와 사업체를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사용자가 분리돼 노사관계가 생겼다.

고용되지 않은 프리랜서는 기업을 통한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프리랜서들은 스스로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든다. 프리랜서협동조합도 그중 하나다. 연구결과를 보면 프리랜서협동조합이 꽤 된다.(박경진, 2023, 논문 ‘프리랜서협동조합 참여 경험에 관한 연구 :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을 중심으로’) 프리랜서협동조합은 경제적 영리를 위한 사업체 성격과 사회적 권리를 위한 결사체 성격이 섞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권리를 위한 사회 활동보다 영리를 위한 사업체 역할이 더 강해 보였다.

한국에는 권리를 위한 결사체로서 프리랜서유니온이 없다. 그러나 프리랜서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방송작가·디지털콘텐츠창작자 등을 조합원으로 하는 유니온이 있다. 비임금 노동자에 속하는 분야의 상당수 유니온이 특정 업종에 묶여 소규모에 머물거나, 기성노조에 가입했다. 이런 유니온들은 독립적 프리랜서 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일터는 소셜팩토리

프리랜서는 1인 사업체이자 1인 결사체로서 영리와 권리를 통합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기업과 혼자 영업하는 프리랜서, 노조와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하는 프리랜서를 비교하면 영향력을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프리랜서가 불리해 보인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프리랜서협동조합을 만들면 그것이 기업보다 효율적이고 더 큰 영향을 발휘할까. 기업이 주도하는 세상인 자본주의에서 그럴 가능성이 낮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산업이 충분하게 발전하지 못해 기업 내부 노동시장을 만들지 못했다. 이때에는 일시 계약을 맺고 일을 시키던 고용형태가 꽤 있었다. 프리랜서는 이처럼 산업의 미발달로 인한 고용형태와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18세기나 19세기가 아니다. 일터와 삶터의 공간 분리, 노동과 여가의 시간 분리, 같이 일하고 출·퇴근하는 통제된 생활 루틴, 회사와 사회를 나눈 것이 공장이다. 프리랜서는 다양한 곳에서 접속해 일하기에 일터와 삶터가 혼합된 공간, 노동과 여가가 뒤섞인 통합된 시간, 각자 자율적 루틴을 가진 생활, 회사와 사회를 통합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21세기의 ‘사회공장(소셜팩토리)’에서 일한다.

새로운 결사체의 가능성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플랫폼에 접속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디지털 팩토리’라고 한다. 하지만 플랫폼에 접속해서 일하는 노동자는 디지털 공간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다양한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이며 관계를 맺으며 일한다. 프리랜서의 일터는 담에 둘러싸인 공장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 ‘소셜팩토리’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산업의 공급사슬은 원청, 하청, 바지사장과 같은 단어를 만들었다. 프리랜서는 클라이언트, 에이전시, PM(프로젝트 매니저)과 같은 단어를 자주 쓴다. 최저임금이나 임금협상이 아니라 프리랜서 일의 단가에 영향을 미치는 숨고나 크몽 등 플랫폼이 있다. 직장엔 노무관리가 있지만 프리랜서에게는 없다.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공장에서 관리자에 맞서며 노조가 자랐다. 사회공장은 과정보다 결과를 통제한다. 사회공장에는 직장내 괴롭힘과 다른 클라이언트의 갑질이나 ‘사이버불링’이 있다. 프리랜서 권리는 전통적 공장의 노사갈등과 다른 조건에서 자랄 것이다. 이는 기존 노조와 다른 결사체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대량생산 시대에 출렁거렸던 계급의 물결은 지나갔다. 사회공장의 프롤레타리아라고 할 수 있는 비임금 노동자는 700만명에 이른다. 이 중 프리랜서는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과 겹치지만 4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늘어난 규모는 프리랜서 운동이 새롭게 전개될 물질적 조건이다. 필요한 것은 이들에게 딱 맞는 풍부한 발상이다. 프리랜서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권리주체가 되는 경로를 찾는 과정에는 설레임이 있다. 나도 고용계약을 벗어난 프리랜서다.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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