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사건의 승패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의뢰인에게 유·불리를 설명해 줘야 한다는 게 내 신념 중 하나다. 그러다 보면 화를 내는 의뢰인이 가끔 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저놈들이 나쁜데 왜 제가 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판사님이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럼 나는 또 설명을 한다. “법은 항상 착한 사람 편인 게 아니고요, 판사는 선이 아니라 법에 따라 판단합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심판한다(대한민국헌법 103조). ‘헌법과 법률’은 일단은 ‘현실에 있는 법’, 즉 ‘실정법’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정법 외에 정의 같은 상위 가치나 도덕도 법관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법철학의 오랜 논쟁 지점이다.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해결하는 방법이 개정이다. 법이 정의에 부합하지 않아서 정의에 따를지, 실정법에 따를지 고민이 된다면 실정법을 정의에 부합하게 개정하면 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의 고르디우스 매듭은 노동조합원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그에 기초해서 생계를 틀어막는 가압류가 인정되는 현실이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맞서 노조원들은 농성에 돌입했다. 국가와 사측은 헬기와 기중기까지 동원해서 진압한 후 노조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2013년, 약 47억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정리해고 관련 쌍용차 노동자 서른 명이 사망했고 압도적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국가와 사측에 47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 이후 10년.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은 하청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을 청구했다. 딱 10배 불어난 것이다. 월급 250만원을 받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1천567년을 일해야 갚을 돈이다.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 유최안 부지회장은 시사IN 인터뷰에서 470억원에 “아무 느낌도 없다”고 했다. 가늠도 안 되는 470억원보다는 1천만원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그들이 470억원을 갚을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러니 470억원을 청구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간명하다. “노동조합 하지 말고, 쟁의하지 말라”는 것.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법원은 한 번도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준 적이 없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노동조합원들은 “노조법을 준수하라”고 외칠 수조차 없었다. 바로 그 법이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해 왔던 까닭이다.

이번에 통과된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노조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서 ‘실질적 지배관계 있는 원청’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쟁의행위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 일반으로 확대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경우 귀책사유와 기여도를 따지도록 해 ‘쟁의로 인한 손해 전부’를 각 조합원에게 청구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재계와 여당은 불같이 들고 일어났다.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정치 파탄! 경제 파탄!”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노동 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해야 정치도, 경제도 정상적으로 굴러간단 말인가. 노동자야말로 수십, 수백억 원의 배상액 앞에서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절규하면서 몸을 던지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단 말인가.

10년 넘게 논의되다가 겨우 통과된 법인데도 ‘거부권(재의요구권)’ 얘기가 나오는 요즘, 그저 묻고 싶다.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죽어 간 목숨들 앞에서 숙연해질 수는 없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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