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려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헌법과 민법 위배 소지가 클 뿐 아니라, 그간 애써 쌓아 온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부총리가 마치 노사관계 전문가처럼 말하는 장면은 해방 이후 70년 동안 반복돼 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기업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은 대통령에 발맞춰 이미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미루는 법안을 내놨다. 범법자 양산과 기업 도산을 이유로 들었다.

1950년대 최극빈국 한국에선 ‘경제’를 위해선 어떤 걸 희생해도 다 용서가 됐다. 자본과 그 자본을 위해 복무하는 국가권력은 70년 넘도록 ‘경제 우선주의’, 사실은 기업주만 배불리는 이 케케묵은 담론을 이어간다.

MBC는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위협한다?’는 의문형 제목을 단 기사를 썼다. MBC는 이 기사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과연 기업 경영을 위협하는지 팩트체크 했다.

중소기업이 준수하기 어럽다는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은 안전을 위한 목표 설정, 전담 조직과 전문인력 배치, 시설과 장비 마련 등이다. 굳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어도 안전을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이다. 그래도 어렵다는 중소기업의 호소에 중대재해처벌법은 50명 미만 사업장에 이미 3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준비를 도우려고 정부가 각종 지원도 했다. 정부는 올해만 1만 6천개 중소기업에 안전 컨설팅을, 1만개 기업에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14만개 기업에 안전 교육을 지원했다.

MBC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주를 범법자로 만드는지도 살폈다. 2년째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노동부가 수사한 사건은 지난 8월 말 현재 408건이다. 이 가운데 검찰에 간 게 83건, 이 중 검찰이 기소해 재판까지 간 건 25건에 불과했다. 재판 결과가 나온 건 8건인데 7건은 집행유예였고, 실형은 딱 하나 징역 1년이었다.

이쯤 되면 범법자 양산은커녕 노동부와 검찰이 늑장 수사와 소극 기소 등 솜방망이 처벌했다고 비난해야 옳다. 법 시행 이후 노동현장에서 숨진 노동자는 1천200여 명에 달한다. 반면에 실형을 받은 사용자는 단 1명이다.

기업주는 50명 미만 사업장이 얼마나 되고, 또 거기서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얼마나 일어난다고 소기업까지 법을 적용하느냐고 볼멘소리다. 올해에만 숨진 노동자가 392명인데 이 가운데 80%인 312명이 50명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는 짓은 그만하자.

2일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숨지자 한겨레는 다음날 19면에 “‘삼다수 개발’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라는 제목으로 부고 기사를 썼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선 초대 제주도지사에 당선됐다. 재임 중 먹는 샘물 ‘삼다수’를 개발했다”며 신 전 지사를 기렸다.

2018년 10월 30대 숙련 노동자가 기계를 정비하다가 끼어 숨진 공장이 바로 제주 삼다수 공장이다. 제주도 지방공기업인 삼다수 공장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노동자에겐 12시간 맞교대로 장시간 노동을 시켰다. 당시 노동자들 사이에선 위탁판매처인 광동제약과 약속한 물량을 무리하게 맞추다가 변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주도의회는 감사 결과 ‘삼다수 생산회사인 제주도개발공사가 임원 정원은 다 채우고 하위직 근무자는 나몰라라 했다’고 지적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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