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철(노무법인 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얼마 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주년 축하의 밤 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정신질환 산재처리 기간이 지연되는 문제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대화를 나눴다. 업무관련성 판단에 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특별진찰제도가 오히려 정신질환 재해자의 상병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고 공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에서 “특진의료기관은 소속 병원 또는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의료기관 중에서 복수 추천해 선택 가능하도록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신질환 사건의 경우 필요시 종합심리검사를 위한 특진과 업무관련성 평가를 위한 특진을 시행하고 있다. 1급 정신건강임상심리사를 보유한 개인병원에서 심리평가를 한 경우라도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에서 심리평가를 다시 받도록 하기 때문에 종합병원 이상에서 심리평가를 받지 않은 경우 특진이 불가능하다. 특진 의료기관을 복수 추천해 선택할 수 있지만, 종합병원이라 하더라도 1급 정신건강임상심리사가 없는 경우가 있어 특진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다. 특진 의료기관에 진료 예약을 하고, 심리평가를 받고, 심리평가보고서를 받기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제한적인 특진 의료기관에서 특진 의뢰가 이뤄지게 되고, 특진 기간에서 처리 기간은 자연스럽게 길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종합심리검사를 마쳐도 업무관련성 특진을 보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하염없이 결과통보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산재 인정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과 장기간에 걸친 처리 기간 지연으로 재해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막막한 처리 기간에 재해자는 초조·불안·우울·분노 등 극심한 심리적 고통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한다.

정신질환 특진 의료기관을 종합병원 이상으로 지정해야 하는지? 반드시 1급 정신건강임상심리사를 보유해야 하는지? 최종적으로 정신질환 사건에 대한 특진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의 의문을 거듭하며 밤 늦도록 대화를 이어 갔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기술적으로 처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상담 과정에서 개인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 대학병원으로 옮기거나, 사건 접수 전 대학병원에서 심리평가를 받는 방법으로 그나마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

최근 정신질환 사건(인정)을 요양신청일 기준으로 누적 처리일수를 정리해 봤다. 종합병원에서 초진을 받거나 전원했던 사건(적응장애)의 경우 A사건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의뢰까지 144일, 심의 349일, 결과통보 352일이 걸렸다. B사건은 질병판정위 심의의뢰 76일, 질심의 113일, 결과통보 139일이 소요됐다. C사건은 심의의뢰 72일, 심의 126일, 결과통보 128일 걸렸다. 반면 개인병원에서 초진을 받았던 사건 중 D사건은 심리평가 특진의뢰 6일, 업무관련성 특진의뢰 160일, 질병판정위 심의의뢰 479일, 심의 499일, 결과통보까지 510일이 소요됐다. E사건은 심리평가 특진의뢰 8일, 질병판정위 심의의뢰 142일, 심의 192일, 결과통보까지 194일이 걸렸다. A사건은 질병판정위 처리기간이 205일 소요됐는데 정신질환 사건을 서울질병판정위만 담당하던 시기 사건이다.

현재 전국 질병판정위에서 정신질환 사건을 담당하면서 처리 기간은 과거에 비해 단축되는 추세다. 반면 D사건은 두 차례 특진을 거쳐 질병판정위 심의의뢰까지 479일이 걸렸다. 재해자는 휴직기간 문제로 최종 결과통보 전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업장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D사건은 직장내 괴롭힘, 보복성 인사조치 등 고용노동부·노동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비교적 업무관련성이 명확한 사건인데도 업무관련성 특진만 319일 소요됐다. 최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사건은 전반적으로 처리기간이 단축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F사건은 요양신청 후 32일 만에 결과를 통보받았다. 처리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신질환 재해자의 상병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요양기간도 늘어난다. 집중적인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처리기간 지연에 따른 상병 악화라는 불필요한 경험을 하지 않고, 요양기간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정신질환 사건 특진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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