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철 건설노조 광주전남전기지부장

1995년께부터 시작된 직접활선 공법은 이른바 ‘사람 잡는 죽음의 공법’이라 불렸다. 얼마나 많은 동료 배전노동자들이 감전으로 팔다리가 절단되거나 사망했는가. 수많은 사고에도 한국전력은 모든 원인을 작업자 과실로 돌렸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이선공법 폐지하라, 직접활선 폐지하라’며 투쟁했다. 그 결과 2017년 직접활선 공법은 폐지됐다.

그러나 우리 배전노동자들은 20년간 직접활선 공법으로 누적된 전자파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 잡는 죽음의 공법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남긴 것은 백혈병과 갑상선암·뇌척수암·비세포림프종 같은 직업성 질환으로 병들거나 죽어 가는 것뿐이었다.

건설노조가 2016년 실시한 ‘배전전기원 건강영향조사’ 결과 갑상선암 6명, 갑상선 질환 12명, 백혈구 중 절대림프구수 이상자, 갑상선 기능 이상자 등이 다수 발견됐다. 뿐만 아니라 백혈병을 비롯한 조혈기계 암질환자 6명, 뇌종양 등 두경부암 4명, 급성심근경색증 16명, 뇌경색 및 뇌출혈 10명, 위암을 포함한 암이 19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반 산업군은 물론, 전자파를 다루는 다른 직종 노동자들보다 매우 높은 발병률이다.

이에 건설노조는 배전노동자들의 백혈병과 갑상선암 등 직업성 질환의 근본 원인이 활선작업 시 나오는 전자파임을 확신하며 투쟁했다. 그 결과 2018년 장상근 조합원, 2019년 임태성 조합원의 백혈병이 전자파에 의한 직업성 질환임을 인정받았다. 국가가 배전노동자의 작업과 전자파의 인과성을 인정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2016년 노동자 12명의 집단 산재신청과 관련해 ‘전자파와 갑상선암의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타직종과 비교해 볼 때 전기공 직업군에서 갑상선암이 특이하게 높게 나타나지 않아 직업성 연관성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2020년 불승인했다.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은 부당하며 행정법원에 소송한 결과, 법원은 3가지 이유를 들어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첫째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공적보험으로서 목적에 맞게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20세기에만 해도 폐암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대부분 사람들이 자동차와 공장의 증가로 폐암이 발생한다고 믿었지만, 불과 40년 전 흡연이 폐암에 직접적 연관성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과 같은 이치다.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기원으로 일하면서 극저주파 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된 점이 발병에 유해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 결정의 핵심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배전노동자의 직업성 질병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2만2천900볼트 활선상태의 전기를 만지며 오직 국민 생활과 산업활동에 필수인 전기를 목숨 걸고 유지·보수한 노동자들이다. 더 이상 직업성 질환으로 고통받지 않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치료하고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배전노동자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몫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