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각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법규실장)
▲ 정윤각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법규실장)

단풍이 물들어 가는 늦가을, 조만간 단풍이 지듯이 이 계절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나오면 길가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주말인데도 정동길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러한 서울의 중심 한가운데를 산책을 하며 즐겁고 여유로운 상념에 잠기고자 하나, 이미 내 머릿속은 다른 상념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중심지이지만, 내 일터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법은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대체로 아니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법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이러한 법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여기서 법은 단지 헌법과 법률 등 조문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법을 제정·집행·판단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럼 법치주의 속에 사는 이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의 기본권과 그 노동자들이 권리실현을 위해 만든 노동조합의 권리 보장은 법을 다루는 권력기관의 의무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헌법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일하는 사람 모두가 노동자로서 권리를 누리고자 하나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는 법, 일하는 사람 모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나 안 된다고 하는 법, 헌법상 쟁의권을 행사하더라도 그 손해를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부담해야 한다는 법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자주적 민주적 운영을 제한하고자 하는 여러 독소조항이 담겨 있다.

이러한 법 때문에 현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정치를 법치라는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 마치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국가가 수호하려는 듯, 노조가 민주적으로 만든 규약에 시정명령을 내린다.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던 회계 감사를 믿지 못해 재정 장부 등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한다. 이를 거부하자 회계 공시를 법률이 아닌 노조법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원이 납부한 조합비 세액공제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또한 노사가 자유롭게 체결한 단체협약을 기획근로감독이라는 명목으로 조사하고 과도한 운영비 원조라고 시정명령을 내린다고 한다. 이전 정부도 좀처럼 하지 않은 일인 만큼 현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 하지는 않는 듯하다.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은 조직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규약에 의거해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을 분리하고, 회계 감사기관을 운영해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해 집행되고 재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도록 별도의 규정들을 둬 자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노조 집행부 또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구성되고, 주어진 임기가 보장되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노조 운영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며 위법·부당 운영시 법적 책임도 지게 된다. 따라서 국가가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또한 노동조건과 조합활동에 관하여는 노사가 스스로 교섭을 통해 자유롭게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있다. 이것이 ‘협약 자치’인데, 이를 제어하려는 행위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헌법의 기본권 조항 첫 조문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다음으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장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법을 다루는 기관의 가장 큰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다른 상념들이 계속 떠오르지만, 창밖의 붉은 단풍이 지면 몰아칠 한파가 더 걱정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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