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체결된 단체협약을 무효로 할 수 없겠냐.” 기아차 아무개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면서 전달받은 질문이다. 나는 무슨 말인가 했다. 체결 권한을 가진 위원장이 사용자와 체결한 단협인데, 거기에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조합원 찬반투표까지 거쳐 한 것일 텐데 무효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인가 싶었다. 어쨌거나 한동안 뜸했는데 뭔가 시끄러운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기아차 노조간부가 입찰업체들과 짜고 조합원 티셔츠값을 부풀려 뒷돈을 챙겨서 구속됐다는데요. 현장에서는 이것 말고도 이런저런 말들이 떠돌고 있다네요.” 사무국장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대부분은 그야말로 현장에서 떠도는 소문이고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합원 티셔츠값을 부풀려 뒷돈을 챙긴 노조간부가 구속됐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은 벌써 언론에 보도됐을 텐데 내가 놓쳤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포털에서 뉴스를 찾아 읽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에서 보도했는데, 파이낸셜뉴스에서 ‘“이게 1만6000원? 개나 줘라” … 단체티값 부풀려 1억 챙긴 기아 노조간부 구속’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자세하게 전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기아차 노조간부가 입찰업체들과 짜고 조합원들에게 돌릴 티셔츠 값을 부풀린 뒤 1억여원을 챙긴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 2일 경기 광명경찰서는 전날 배임수재, 업무상 배임, 입찰방해 등 혐의로 기아 노조간부 A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9월 기아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나눠 줄 단체 티셔츠 2만8천200벌을 구입했다. 티셔츠 원가는 1장당 1만300원이었지만 A씨는 입찰업체와 짜고 1장당 1만5400원에 납품하도록 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1억43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파이낸셜뉴스 2023.11.3.)

올해 파업 없이 임단협을 마무리한 노조 집행부는 ‘쟁의기금’ 수억 원으로 단체 티셔츠를 구매해 조합원에게 배부했는데, 이를 받은 조합원들이 “걸레짝 같은 쓰레기를 사왔느냐. 개나 입혀라” “이게 1만6천원짜리냐. 개나 줘라” 등 조악한 품질에 항의했고, 일부 조합원은 국민신문고에 진정까지 했다. 급기야 경찰이 노조원들과 납품업체 관계자 등 11명을 입건해 수사하고 뒷돈을 챙긴 노조간부를 구속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이러했다. 부끄러운 짓이다. 아니다. 부끄럽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고, 수치스럽다고 말해야겠다. 조합원을 위해서 활동하는 노조간부가 이런 짓을 하다니,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노동조합인 기아차지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야 마땅하다.

2. 최근 노동조합은 회계 공시제도 때문에 골치 아팠다.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까지 윤석열 정부의 회계공시 제도 추진이 부당하다며 크게 반발했다. 비록 조합비 세액공제 때문에 끝까지 거부하면서 투쟁하지 못했지만, 이 나라 노동조합은 권력이 회계공시 제도가 노조 재정 상태 등을 들여다보고 감시·관리하는 제도로서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고 보고, 여전히 비판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비판해 왔다.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부당하다고 비판한다고 해서 내가 노조가 재정·회계 처리 등을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걸 지지하는 건 아니다. 특히 이번 기아차사건에 여러 생각이 든다. 윤석열 정부는 이 나라 노동조합이 재정·회계 처리가 투명하지 않다고 비난하면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시행했다. 고용노동부 등은 위원장 등 노조간부의 비리들을 폭로하면서 이 나라 노동조합이 온통 그러한 것처럼 매도해 노조 회계공시 제도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몰아 제도를 도입·시행했다. 이 나라에서 노조 회계공시 제도 시행을 지켜본 일반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기아차사건에 윤석열 정부의 노조 회계공시 제도의 도입을 잘한 것이었다고 여기지 않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권력이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도입·운영하는 것이 비판받아 마땅하고, 그래서 폐지해야 하는 것임에도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문제가 많다며 그 제도를 지지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3. 내가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이 노조 회계를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운영하는 걸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윤석열 정부가 시행한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노조가 회계를 조합원들에게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공시제도에 노동조합이 회계를 공시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노동조합의 회계를 국가기관이 지정한 곳에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노조 회계를 국가권력이 관리하는 것이니 반대하는 것이다. 노조가 회계를 조합원에게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걸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가 시행하는 노조 회계공시 제도 보다도 더 철처하게 노조가 재정·회계 처리를 하고, 그것을 세세하게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노동조합이 도입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현재 기아차노조를 비롯해서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회계감사를 두고 정기적으로 노동조합 회계를 감사하고 그 내용과 결과를 공개하고, 조합원이 열람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그렇게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25조·26조). 하지만 이렇게 공개하는 회계감사 내용과 결과만 가지고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재정·회계 처리를 투명하게 공개·열람토록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이번에 기아차사건에서 보면, 조합원들의 의혹 제기에 노동조합이 직접 조사해서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 기아차지부를 비롯해서 노조간부들 비리는 대부분 국가기관에 진정해서 경찰 수사로 찾아낸 것이다. 노동조합 자체로 입찰 비리 등을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거나, 그러한 시스템이 제때 작동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과연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스스로 노조간부의 비리를 찾아낼 수 있는 회계제도 등을 얼마나 도입·운영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당히 많은 노동조합에서 그렇게 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4.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재정·회계 처리가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노동자 단결체로서 노동조합은 굳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힘은 단순히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대한 투쟁력에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노동조합 내부 조합원의 지지를 통한 단결력에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당신이 노동조합의 힘은 사용자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한 투쟁에 있다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지지를 통한 단결이야말로 노동조합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짬짬이 입찰을 통해 노조간부가 뒷돈 챙길 수 있는 노조의 재정·회계 처리를 방치해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지지는 굳건할 수가 없다. 권력이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노조간부들의 각종 비리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오늘 이 나라에서 그저 권력의 공시제도를 비난하고 경찰 수사를 지켜볼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은 재정·회계 처리가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합비가 투명하게 사용하도록 내부적으로 제도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찾아야 한다.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야말로 국가기관을 비롯해 다른 어떤 단체보다도 재정·회계 처리가 투명하다고 여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학교로서 노동조합은 이 나라에서 더욱 굳건히 서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노동의 세상을 위해서 나아갈 수 있다. 비리의 세상이 결코 노동의 세상일 수 없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노동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노동자 단결체인 노동조합은 한걸음 한걸음 스스로 단결체의 문제를 찾아내 개선함으로써 노동자의 지지로 더욱 굳건해질 수가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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