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윤석열 정부는 김승희 전 대통령실 비서관의 딸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자 7시간 만에 경질했다며 봐주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비리 논란이 불거진 공직자 처리 방식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게 경질이다. 그러나 이는 하수 중에도 최하수다. 잘라 버리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지만, 모래에 머리 처박은 타조 꼴이다.

최근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그곳 직원이었던 과학 유튜버 ‘궤도’(본명 김재혁)가 논란의 중심에 선 공직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당사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가장 훌륭한 모범을 보여줬다. 구독자 93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궤도는 과학창의재단에 근무하면서 겸직금지 규정을 어기고 영리활동을 했다. 감사원은 궤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재단 직원으로 근무하면서도 유튜브로 수익을 내고 외부 활동에서도 규정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며 징계 처분을 재단에 통보했다.

논란이 제기되자 궤도는 지난해 8월 재단에 사직 의사를 밝혔으나 재단은 감사가 시작된 뒤라며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감사를 마친 재단은 최근 인사위원회를 열어 궤도에게 정직 2개월 징계를 확정했다. 징계가 확정되고 나서야 궤도는 퇴사 절차를 밟았다.

궤도도 최근 유튜브 채널 ‘안 될 과학’에 “직장내 겸직 규정 위반으로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인사위 결과대로 정직 처분을 받고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돼 창의재단에서 퇴사 처리됐다고 전했다.

비리 의혹을 받는 공직자는 징계가 확정된 뒤에야 퇴사 절차를 밟는 게 원칙이다. 비리 공직자는 감사 뒤 그에 따라 합당한 징계를 받고 거취를 결정해야 옳다. 만약 해당 공공기관 인사위원회가 그에게 파면과 해임을 결정하면 단순 퇴사와 판이하게 다르다.

김승희 전 비서관의 경우 경질이 아니라 비리를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한 뒤 그의 거취를 결정해야 옳다. 유튜버 궤도는 ‘정직 2개월’이란 징계가 확정된 뒤 퇴사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세상에 알렸다.

일개 공공기관 직원조차 정해진 행정 절차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결정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실이 비서관 비리 의혹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법과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일단 경질부터 해버렸다. 입만 열었다 하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실의 행동치고는 어처구니없다. 더구나 김 전 비서관 관련 의혹이 추가로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이뤄진 대통령실의 ‘발 빠른 경질’은 사실상 그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러니 누가 이 정부를 믿겠나.

한국엔 이걸 제대로 따지고 물고 늘어지는 언론조차 없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중동 세 개 나라를 방문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업적을 추켜세우기 바빴다. 조선일보는 10월26일자 1면에 윤 대통령이 사우디에서 ‘특급 환대’를 받았다고 용비어천가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에 ‘윤 (대통령이) 중동 빅3서 107조 오일머니를 잡았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이야 윤 대통령이 107조 투자를 유치했다고 미화·찬양하겠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대통령이 받은 107조가 언제라도 부도날 어음인지, 제대로 된 현찰인지 살피는 게 먼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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