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프레스 기계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기계에 손등이 벗겨져 산재신청을 하러 왔다. 소재 철판 등에 압력을 가해 가공하는 프레스 기계에는 정상적이라면 인체 감지 센서를 달아야 한다. 작업자의 신체가 감지되면 기계의 가동이 중단되는 방식으로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재해 노동자는 “안전 센서를 작동시키면 작업량이 크게 줄어 보통은 꺼 놓는다”고 했다. 위험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회사에서 생산량을 쪼는데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일터에서는 작업의 효율성이 노동자의 안전에 우선한다. 노동자 개인이 조심해서 해결될 수 없는 구조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노동현장에서 산재 사망사고를 취재하고 그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에 따르면 그 견고한 구조의 제일 앞자리에는 일의 효율만을 강조하며 ‘안전 수칙과 배치되는 작업방식이 일터에서 강요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유명한 제빵 프랜차이즈 그룹인 SPC의 하청업체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업무를 담당하다 소스 배합 기계에 끼여 사망한 박아무개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씨가 담당하던 소스 배합기는 가동 중에는 내용물의 덮개가 덮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스 배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작업자가 수동으로 이를 원활하게 조정하기 위해 덮개를 제거한 채 기계가 가동되고 있었다.

안전에 배분하는 돈의 기준 자체가 낮은 것도 구조적 문제다. 2019년 한 해 7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대우건설은 최악의 살인기업 1위에 뽑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2018년부터 2020년 내내 흑자를 유지했다.

법으로 산업안전 관리비의 ‘하한선’이 정해져 있는데 건설현장에서 공사비 중 이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하한선’이 곧 최대가 된다. 공사액의 2%가 채 되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는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안전관리비가 1억원에도 미치지 않아 안전관리 인원도 채용 못 한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해야 할 정부와 노동조합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고용노동부 ‘전국 근로감독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은 740여명에 불과하다. 1인당 약 2천500곳 이상의 사업장을 담당해야 하는데 효과적인 산재예방 및 산업안전근로감독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산재사고 예방을 위한 기업별 지원활동보다 산재 사망사고 발생 이후 사후 처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기업에서 산재사고 은폐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조합 역시 총연맹 단위에 산업안전과 관련된 업무 담당자가 10명 이내로 배치돼 있을 뿐이다. 지역과 산업별 노동조합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인력이 배치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와 같은 한계 속에서 노동조합이 효과적으로 지역과 업종별 노동자의 산업안전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산재 발생시 보상 등과 관련한 지원활동을 해주길 기대하긴 어렵다.

한 해 공식 통계로 800여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업무와 연관해 죽음을 맞는다. 그나마 노동자가 죽어야 지역 언론에 단신기사라도 나오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노동자의 사망사고 외에도 수만 건의 일상적인 업무상 재해는 일하다 겪는 그저 그런 일로 여겨진다.

이래서는 안 된다. 법정 산업안전관리 비용의 하한선을 높이고, 행정복지센터처럼 주변의 가까운 곳에서 노무사 등 전문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업무와 연관해 산재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산재 노동자의 부담을 줄여 주는 것도 시급하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촘촘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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