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식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지담)

나는 노동과 관련된 콘텐츠를 영상으로 제작해 공유하고 있는데 단연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는 주제는 바로 ‘권고사직’이다. 127개의 영상 중 권고사직과 관련된 3개의 영상이 차지하는 조회 비중은 18.3%(3만 건)에 달했다. 대단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권고사직을 겪는 노동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만연화된 현상이라 조심스럽게 해석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내 주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친한 동생 A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 동생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이탈리아의 제과 브랜드를 국내에 유통하는 업체에서 일한다. 팀장은 A에 면담을 요청한 후 “회사 사정으로 오늘까지 나오고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 한 달치 급여는 추가로 나갈 것”이라고 통보했다. 회사가 어려우니 당장 짐을 싸라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권고사직이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고민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A는 알겠다고 했고 팀장은 곧이어 이 사실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번복하기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팀장은 원하는 답변을 얻었기에 A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답이 없었고 이는 인사팀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이사가 인원 조정을 결정한 후 하루 만에 A는 직장을 잃었다. 곧이어 A와 같은 날 입사했던 동료 B 역시 같은 신세가 됐다. 정규직이라는 타이틀도 권고사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권고사직은 회사의 권고에 따라 노동자가 사직하기로 합의하는 것이기에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노동자가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는 노동자가 혹여나 생각이 바뀔까 봐 사직서부터 작성하자고 한다. 사직서를 작성한 순간 문제 삼을 방법은 사라지고 만다. 권고사직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나 법률이 없으니, 사용자에겐 어떠한 제약도 없다.

권고사직은 해고처럼 30일 전에 통보할 필요도 없으니 이 사례처럼 당일에 나가라고 해도 뭐라 할 수가 없다. 해고는 서면으로 시기와 사유를 써 줘야 하는데 권고사직은 구두든 문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해고가 발생하면 부당하다고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는데 권고사직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래서 회사는 권고사직을 선호한다.

문제는 노동자가 회사의 권고를 거부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회사에서 사직을 권한다면 노동자는 “싫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권고사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권고사직을 거부한 후 앞으로 예상되는 험난한 직장생활을 생각하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단 하루 만에 책상을 비우라는 회사에 버티고 남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더러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실제로 권고사직을 거부한 후 다른 곳을 발령을 내거나 주요 업무에서 배제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입사한 팀장은 권고사직을 거부한 뒤 총무팀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전(前) 마케팅팀장은 먼지가 수북한 서류를 들춰 가며 재고와 물품을 정리했고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부당한 전보라는 판정을 받았다. 권고사직을 받아들여서 나가느냐 견디지 못해서 나가느냐의 차이일 뿐 회사의 뜻대로 끝을 맺게 된다. 이에 권고사직을 ‘권고’사직이라 부를 수가 없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는 놀랍게도 2023년 고용노동부에서 ‘청년친화강소기업’에 선정됐다. “일·생활 균형, 임금, 고용안정, 혁신역량 등이 우수해 청년들이 근무하기 좋은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하루 만에 두 명의 청년의 일자리를 뺏아 놓고도 고용안정에 ‘청년친화’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청년친화강소기업’으로 선정된 뒤 부당하게 해고하면 선정이 취소된다. 아무래도 이 회사가 해고가 아닌 권고사직을 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지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청년친화’라는 타이틀은 내려놓길 ‘권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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