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우리 노동 성격분석 게임

▲ 조건준 아유 대표
▲ 조건준 아유 대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017년 이후 탄생한 노조와 프리랜서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을 인터뷰했다. 센터 교육위원회는 노동운동의 주류가 아닌 노동자들 교육한 뒤 평가했다. 구체적 노동 현실을 모르면서 ‘안다는 착각’으로 가르치려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면서 새로운 노동과 노조를 더 잘 알기 위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에 대한 조사와 연구들은 대부분 현황 파악에 그치거나 제도화를 위한 분석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될 것인지를 초점에 둔 조사나 분석은 드물다. 센터 교육위는 사각지대 노동시민이 스스로 힘을 만들어 가는 자력화를 중심에 두고 인터뷰했다.

다양한 노동을 인터뷰하면서 노동 특성을 드러내는 연결라인·스토리·집단성·사회성 네 가지 항목이 떠올랐다. 센터는 인터뷰 결과를 네 가지 주제에 따라 분류하면 MBTI처럼 성격유형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 우리 노동 성격분석과 그에 따른 과제를 알아 보는 참여형 프로그램에 인터뷰 참가자들을 초청했다.

다양한 연결라인

인연이 있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설화가 있다. 중국에서는 결혼을 할 때에 붉은색을 쓴다. 일본에도 이런 문화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설화가 ‘홍연’이라는 노래로 탄생했다. 서로를 잇는 붉은 실은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기술로 탄생한 네트워크다. 노동이 연결되는 네트워크는 다양하다.

일반적 제조업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일하며 ‘생산라인’을 따라 관계를 맺는다. 공장을 넘어서면 공급사슬을 따라 연결된다. 공급사슬을 따라 연쇄적으로 노조가 생긴 사례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전한 요즘, 흩어져 있어도 ‘온라인’을 통해 업무를 공유한다. 온라인이 연결 수단이라는 것을 온라인에서 시작한 노조들이 보여줬다. 공공부문에서는 관공서를 통해 연결되는 ‘관라인’이 있고, 서로 모일 기회가 없는 노동자는 고객을 기다리는 길에서 관계를 맺는 ‘길라인’을 보여줬다.

다양한 연결라인을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노동 내부 주체들이 내부 공간을 활용해 서로를 연결하는 내부형(Inside-out)과 노동과정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밖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하는 외부형(Outside-in)이 있다. 생산라인을 통해 연결되는 사례들은 내부형이다. 온라인을 활용해 연결된 사례는 대부분 외부형이다. 내부형은 집단적 힘으로 노사교섭을 통해 요구를 해결하는 반면, 외부형은 연대를 통해 사회 이슈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로 다른 스토리

개인은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쓰고 집단은 역사라는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집단도 저마다 독특한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의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고, 어떤 집단을 안다는 것은 그 히스토리(역사)를 안다는 것이다. 신생노조들도 저마다 다른 스토리를 품고 있다.

노조가 생기면 처우나 지위가 상승하지만 사용자 대응에 따라 조합원이 늘었다가 줄어들고, 처우가 나아진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방법으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스토리 라인은 상승하다가 정체하거나 하락한다. 몇몇 사례에서는 조합원도 늘고 처우도 개선되며 꾸준히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급속한 임금인상을 비롯해 직선으로 쭉 상승하는 사례도 있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울퉁불퉁한 그래프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다양한 스토리를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조합원수가 늘고 처우도 올라가는 상승형(Up)과 조합원수가 정체하거나 사용자의 대응에 따라 줄어들고 처우도 잘 개선되지 않는 하강형(Down)이다. 정체하거나 하강하는 사례는 그 원인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절실했다.

집단성에 차이가 있다

전통적 산업에 속한 사례에서 노동자는 공장이나 사무실에 모여서 일한다. 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 함께 출근하고 협업하며 같이 밥 먹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새로운 산업에 속하는 플랫폼 노동과 IT산업 사례 노동자들은 공장이나 사무실에 모이지 않고 재택근무나 카페 등 불특정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연결돼 일한다. 이들의 루틴은 각각 다르다.

집단(Group) 노동과 분산(Scatterd) 노동 사이에는 다양한 노동이 있다. 전국의 점포에 고정적으로 출근하지만 혼자서 일하는 경우, 프리랜서지만 특정 기업에 일정 기간 출근해서 일하는 경우, 독립 계약자로 일하는 경우, 분산돼 있지만 수시 소통으로 집합적 힘을 보여주는 등. 이런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그에 적합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찾는 데 유용하다. 기업에 취직한 경우 노조를 만드는 것은 ‘생계를 위한 업무적 관계’를 ‘권리를 위한 사회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취업하거나 취업을 하지 않는 노동자는 커뮤니티나 노조를 통한 소속감을 필요로 한다.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전통적 산업에서 노조는 ‘강력한 단결’을 강조한다. 분산돼 일하는 사람들은 ‘느슨한 연결’을 선호한다. ‘느슨한 연결’을 원하는 사람에게 ‘강력한 단결’을 주문하면 생뚱맞을 수 있다. 집단성 차이는 노무관리의 차이를 만든다. 전통적 제조업은 경영진에서 현장에 이르는 노무관리가 있지만 새로운 산업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노동의 대응도 달라야 한다.

꽤 많은 것을 보여준 사회성

사람들은 사회성을 사교성으로 생각하지만 인터뷰에서 다양한 얘기가 오갔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너와 나의 권리를 자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 감각이 인터뷰 목표에 맞는 사회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해당 직업이나 직장 동료들이 가진 사회성을 직관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했다.

조합원이 늘어 집단력이 커졌으나 사회성이 약해진 사례도 있다. 스스로 힘으로 요구를 관철시킴으로써 집단 외부와 관계에 소홀하면 집단성과 사회성이 반비례한다. 플랫폼 노동이나 프리랜서는 집단성이 낮지만 사회성이 높다고 답한 것이 흥미로웠다. 일을 따내기 위해 사교성이 필요한 사람의 사회성은 정말 높을까. 사회성과 이익이 만나면 ‘생계형 사회성’이 된다. 예술 작품을 위해 동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지만 내부 갑질에 침묵을 강요받는 사례도 있다. 사회성과 권력이 만나 ‘억압적 사회성’이 되는 사례다. 사회성이 서로를 존중하는 권리와 만나면 ‘다정한 사회성’이 된다.

이상의 4가지 항목을 표로 요약할 수 있다. I형과 O형의 연결라인, U형과 D형의 스토리, G형과 S형의 집단성, P형과 R형의 사회성을 조합하면 우리 노동의 MBTI가 나온다.

한국비정규센터가 개최한 ‘핫한 연결, 쿨한 연대’라는 제목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자기가 속한 유형을 찾아 유사한 그룹을 이뤄 장단점과 개선 방법을 얘기했다. 약점을 강점으로 해석하는 재치 있는 발상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연결되지 않은 노동이 횡적 연결을 통해 다양성을 느끼고 시사점을 얻는다. 처음 시도한 ‘우리 노동 성격분석 게임’이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게임을 즐기며 더 나은 노동을 생각한다면 좀 더 다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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