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기로 한 직후인 지난해 4월께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의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집회 금지 장소를 열거하고 있는 집시법 11조 각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수많은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이 켜켜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국내 주재의 외국의 외교기관’ 부분 위헌(2000헌바67·83), ‘국회의사당’ 부분 헌법불합치(2013헌바322 등 병합), ‘국무총리 공관’ 부분 헌법불합치(2015헌가28), ‘각급 법원’ 부분 헌법불합치(2018헌바137) 등], 구태여 대통령 집무실을 금지 장소로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은 집회 금지 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을 추가하려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집시법 개정안과 사이좋게 융합해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안(대안)으로 호흡하고 있다.

입법부의 대통령 집무실 비호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행정부의 수반은 우리 행정부 스스로 지킨다’는 결기로, 경찰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의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통고를 남발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곧 (집시법 11조3호가 금지 장소로 규율하고 있는) ‘대통령 관저’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일터(집무실)와 거주지(관저)를 구분하지 않고 집무에 전념하고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안타깝게도 사법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법원은 ‘대통령 집무실’은 집시법 11조3호의 ‘대통령 관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집행정지 결정을 한 데 이어, 본안 판결에서도 경찰의 금지통고를 취소했다(서울행정법원 2023. 5. 12. 선고 2022구합66675 판결). 한편 ‘대통령 관저’ 규정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경찰의 간절함이 애석하게도,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11조 중 ‘대통령 관저’ 부분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헌법재판소 2022. 12. 22. 선고 2018헌바·2019헌가1 결정, 단 2024. 5. 31.까지 잠정적용).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쟁이 가여웠는지, 보다 못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가 용이하게 금지될 수 있도록 하는 집시법 시행령(대통령령) 개정안이 이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이다. 집시법 12조는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할 경우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이 자체가 포괄위임입법 금지 원칙 위반이라는 점은 별론으로 하고), 이번 집시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태원로(‘삼각지 고가도로~녹사평역 사거리’ 구간)에서의 집회가 쉬이 금지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주지하듯, 이는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 도로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취지가 ‘국민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한 것’이라더니,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길이 마침내 열린 것이다. ‘대통령 관저’ 규정까지 동원해서 금지통고를 던진 경찰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집시법 12조가 부여하고 있는 재량권을 떳떳이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바로 이 개정 시행령 규정을 근거로 트랜스해방전선의 집회신고에 금지통고했다.

헌법재판소가 “집회 장소는 집회 목적·효과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집회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 특정 장소를 집회 장소로 정할 때는 그곳이 집회 목적과 특별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회의 자유는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해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 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금지한다”(헌법재판소 2003. 10. 30. 선고 2000헌바67 결정 등)고 천명한 뒤로 강산은 두 번, 대통령은 네 번 바뀌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법리를 토대로, 인천광역시청사 앞 인천애뜰에서의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인천광역시 조례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을 했다(헌법재판소 2023. 9. 26. 선고 2019헌마1417 결정). 특히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집회 참가자들이 항의의 대상으로 삼은 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의 집회·시위는 효율적인 목적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원거리에서의 집회는 가능하므로 문제 없다’는 인천광역시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배척했다.

시민들이 정치·사회 공동체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공간을 집회 장소로 결정할 권리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 요소라는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들은, 모름지기 국기기관은 국정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국가의 권력기관과 위정자라면 더더욱, 언제든 시민들의 비판적 의견 표명에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는 민주 정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성 경쟁, 뒤이어 직접 등판한 대통령의 자력구제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의 집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될 위기에 처했다. 대통령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헌법 66조2항). 그리고 헌법상 집회의 자유는 ‘집회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대통령일지언정, 아니 오히려 대통령이기 때문에 집무실은 執務室(‘사무를 보는 건물’)일 뿐, 集無室(‘집회가 없는 건물’)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우리 시민들은 다시 민주주의를 구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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