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코로나 19가 끝나면서 그동안 미뤄졌던 굵직한 국제노동단체 회의가 연이어 열렸다. 8월 미국에서 국제사무직IT서비스노조(UNI) 대회가,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공공노련(PSI) 총회가 있었다. 한국 대표로 다녀온 이들이 참가기를 올려 노동운동의 국제적 흐름을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지난달 2~14일 14일까지 7명의 보건의료노조 대표단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NU(국제간호사연대) 10주년 국제회의와 CNA(캘리포니아 간호사노조) 120주년 컨벤션을 다녀왔다. 행사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스탠포드 대학병원, Alta Bates Summit medical center Sutter 병원 투어, UC Berkeley Labor Center(버클리대학 노동연구소), 세인트메리 공원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등을 방문했다. 노조 인력정책 담당자들과 간호사 대 환자 비율(Ratios) 세부 쟁점 관련 정책간담회, 한인 간호사들과 집단 간담회 등 의미 있는 미팅시간을 가졌다. 한국 노동운동과 보건의료운동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를 초청한 CNA는 샌프란시스코 옆 오클랜드에 중앙본부를 두고 있으며, 1903년 미국 내 최초 간호사 조직으로 창립된 진보적 독립노조다. 우리가 최근 핵심과제로 투쟁하고 있는 Ratios 법안(간호사 대 환자비율 1:4)을 세계에서 최초로 2001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통과시키고 2004년부터 전면적용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조직도 4배 확대됐다. 이 투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재 조합원은 22만여명이다.

GNU(국제간호사연대) 국제회의

10월4일에는 GNU 10주년 기념 국제회의가 있었다. 총 32개국에서 18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10년 전에 비해 참가국이 두 배 이상 늘었다. GNU는 총 35개국으로 회원국이 늘어났다. 기존에 우리나라 포함 미국, 호주, 브라질, 캐나다 등이 주축이었는데 이번에 프랑스, 영국, 타이완, 남아공, 일본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ICN(국제간호협회)의 한계 속에 참가국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제를 보면 세계 각국 간호사 노조들이 어떤 투쟁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팬데믹 경험과 이를 통해 배운 교훈 나누기,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직원 고용 및 안전한 환자 간호를 위한 투쟁, 기후위기 대응 등이었다. 한국은 올해 진행된 간호사 대 환자비율 1:5 쟁취투쟁을 발표하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회의 마지막에는 세계보건기구(WHO) 팬데믹 조약 초안에 대한 대응으로 GNU 긴급결의문이 채택됐다.

주요 내용은 12월4일에 시작하는 팬데믹 예방·대비·대응 관련 국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협상 라운드 전에 모든 팬데믹 및 위기 대응 및 준비 프로그램에서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중심적 우선과제로 포함시킬 것을 각국 보건복지부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또 모든 팬데믹과 위기 준비 대응 프로그램에서 기후 위기를 중심적 우선 과제로 포함시킬 것 등을 강력히 권고했다.
 

CNA 120주년 컨벤션

CNA 120주년 컨벤션은 이달 6~7일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렸다. 모스코니센터는 암살된 샌프란시스코 전 시장 조지 모스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고 한다. 1981년 개원해 198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월터 먼데일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 장소다. 3개의 메인 홀로 구성돼 있고 대규모 전시 공간과 로비, 82개의 연회장, 107개의 회의실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규모가 우리 코엑스보다 휠씬 더 큰 듯하다. 로비에는 12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미국 진보적인 출판사 Haymarket books 책도 판매하고 있었다. 대회장 입구부터 공식명패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고 큰 가방 소지도 불허됐다. 폭발물탐지견이 곳곳에서 다니고 있었다. 주최측 사무총장 옆에는 항상 개인 경호원이 따라다녔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낮선 풍경들이다.

오전 Plenary Sessions에는 해리스 부통령과 미국노총(AFL-CIO) 임원, 진보적인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축사, 현장 투쟁 사례발표 등이 이어졌고, 오후에는 조합원 보수교육(CE Block)과 연결해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저녁에는 만찬과 함께 미국 민중운동역사를 다룬 특별 퍼포먼스(The peoples speak)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이어졌다.

조합원 보수교육(CE Block) 시간에는 미국이 전 세계 간호사 대 환자비율(ratios) 투쟁을 선도하는 만큼 △ratios : 미국 내 및 해외의 고용 의무화 법적 투쟁 주제를 필두로 △OSHA(미국 산업안전보건청) 기준 및 이행 △코로나-19 및 기타 호흡기 병원균 △직장내 폭력 예방법 △인종, 젠더, 기후&미래 : 서로를 돌보는 경제(caring economy) 구축 △사회정의 노조주의와 의료 서비스 투쟁 △이윤보다 환자가 우선 △새 생명을 주는 치료 : 성전환 (트랜스젠더) 환자 보호 & 성확정 의료서비스 △공정한 정신건강 의료 시스템 구축 △불확실한 시대에서의 환자 치료 △빅테크로부터 간호사들과 환자 보호하기 △신세대 간호 노동자들의 관점 △의료 및 재난 대비를 위한 RN 사회적 옹호 등 CNA/NNOC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 방향이 각 주제에 잘 녹아 있었다.

“간호 일선에서 글로벌 연대”라는 국제 세션은 최근 위기 상황에서 간호사와 보건의료노조가 직면한 도전과 기회를 논하는 패널 토론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우리 노조 나순자 위원장이 프랑스·남아공·파라과이 노조 대표와 함께 사례발표를 했다. 4개국 모두 좋은 투쟁사례를 발표했지만 우리 노조의 올해 7월 산별총파업 영상과 발표자료는 참가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끝나고 각국에서 같이 사진 찍자는 요청이 쇄도했다.

행사 운영과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은 휴대폰 앱을 다운받으면 모든 일정 공지와 안내가 휴대폰을 통해 확인 가능한 것이다. 통역도 휴대폰 앱으로 작동한다. 이번에 참가한 모든 국가에는 대면 통역자 3명(교대로 운영), 비대면 원격통역자 2명 등 총 5명이 배정됐다. 화장실은 남녀 구분없이 All gender restroom으로 운영된다. 별도 부스에서 판매되는 다채로운 노조 기념품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행사 기념품도 눈에 띈다.

이번 컨벤션에는 미국 각지에서 2천여명의 간호사 조합원들이 참가했는데 항공료, 숙박비 등 일체의 참가경비를 노조에서 다 지원한다고 한다. 참고로 노조 조합비가 한 달에 150달러 수준으로 높다. 몇 년 전 1천여명이 참가할 당시 행사비가 200만달러가 소요됐다고 했는데 이번엔 참가 규모가 2배 이상인 만큼 행사비도 대략 300만~400만달러가 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CNA 국제·정치사업 담당 켄진(Kenneth S. Zinn)의 은퇴식이 저녁 만찬시간에 열려서 작은 감동을 줬다. 우리나라도 이제 586세대 노동운동가들이 은퇴하는 시점이다. 정치권의 586과 도매금으로 같이 넘어가면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은퇴식이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탈출(?)해서 미국에 온 간호사들을 샌프란시스코 아래쪽 산호세에서 만났다. 한국과 미국 간호사 생활을 구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보다 두 배 높은 임금, 절반 수준의 환자수, 하루 12시간 주 3일제 근무, 자율적인 교대시간 선택과 규칙적인 근무시간, 이런 노동조건을 마냥 부러워할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실천적 고민이 쏟아졌다. 이후 더 많은 교류를 이어 가기로 했다.

규모의 경제, 한국 노동운동은 불가능할까

우리 노조도 산별기금으로 2박3일 대규모 정책대회를 치러 봤지만 이번에 3박4일로 개최된 2천여명 규모의 대규모 행사는 모든 면에서 돈이든 투쟁이든 규모의 경제를 통해 의미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 노조는 집회 동원에는 나름 규모 있는 동원이 가능하지만 그밖에 돈과 정책의 집중, 사업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에는 너무 인색하다. 주요 자원이 너무 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만났던 모 대학 교수님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밖에서 볼 때 한국 현대사는 권력이 군인에서 시작해서 운동권(시민운동), 검찰 권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럼 다음은 300만 조합원을 보유한 거대 조직 노조 차례일 수도 있는데 정작 노조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가? 그런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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