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처음 ‘전국 비정규 노동자대회’가 열리던 2003년 10월26일,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이던 이용석 열사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으로 투쟁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노동자를 질책했지만, 비정규직의 아픔과 고통을 공유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싸웠고, 공단 담장을 뛰어넘어가 항의했다. 그 투쟁 이후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졌고 공단 비정규 노동자들은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는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해마다 10월26일이면 전국 비정규 노동자대회가 열려 비정규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부터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열사가 분신하던 그 날 그 집회장에서는 ‘비정규직 철폐연대가’가 처음 선을 보였다. 지금도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 노래를 함께 부른다. 그러나 ‘이용석’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많은 비정규직들에게 그 이름은 매우 낯설 것이다. 이용석 열사 20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행사도 하고, 좌담회도 하면서 다시 이용석 열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가 열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20년 전 한 비정규 노동자의 목소리를 다시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것일까.

아마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 때문일 것이다. 이용석 열사는 공공부문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저항했다. 정부는 열사의 죽음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반복적으로 내놨지만 여전히 공공부문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자회사 노동자로, 용역노동자로, 그리고 초단시간 노동자로 많은 비정규직들이 일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임금을 받고 아무리 오래 근속해도 1년을 다닌 노동자들과 별 차이 없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권한과 권리가 제한된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 온갖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2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은 계속 싸운다. 싸움은 이렇게 이어져 있다.

열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외쳤던 요구를 우리도 외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용석 열사가 투쟁을 결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겠다고 결정했을 때의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용석 열사는 자신이 활동에 나선 것은 목포의 공부방 학생들 때문이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가르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차별받고 경쟁하는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고 과연 학생들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차별에 순응하고 각자도생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권리가 있으며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조롱이 되는 시대, 이용석 열사를 기억함으로써, 투쟁하는 존재들의 존엄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이용석 열사는, 유서에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들을 자신의 희생으로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했다. 이용석 열사는 두렵거나 절망하여 현실에 주저앉는 노동자도 많고, 경쟁에서 홀로 살아남으려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동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함께 파업에 나선 동료들에게는 “오늘 우리가 함께 선 이 자리 이 시간의 의미를 잃지 않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오늘 모인 이 자리를 자축하며 즐겁게 투쟁하자”고 말한다. 죽음을 선택했으면서도 참으로 낙관적인 그의 유서를 다시 들여다보니,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조만간 이용석 열사가 분신했던 종묘공원에 가봐야겠다. 그곳 바닥에는 작고 동그란 동판이 하나 있다. 그 시절 함께 싸웠던 이들이 이용석 열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2019년에 새긴 동판이다. 많은 이들에게는 의미 없이 지나다니는 길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 20년간 이용석 열사를 기억하는 이들, 그리고 열사를 만나본 적이 없더라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작은 공간이 새로운 힘을 주는 곳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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