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20일 재판을 앞두고 바빴다. 최근 문제가 된 임금피크제에 관한 사건과 이전에 한참 문제가 됐던 통상임금에 관한 사건이 이날 오전과 오후로, 서울남부지법과 서울고법에 재판이 잡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들 사건 모두 노사합의가 문제였다. 정년을 앞둔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과반수노조가 노사합의(동의)해 주고, 상여금을 제외한 몇몇 수당만 포함하는 통상임금에 관해 노사합의(협약)했다. 그 합의를 이용해 사용자가 노동자권리를 침해하도록 한 것이 문제였다. 노동자를 위해서 노조가 사용자를 상대로 합의(협약 체결)한 것을 내세워 주장해야 할 텐데, 노동자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들 사건 재판에서 원고 노동자들을 위한 내 주장은, 노조의 합의(협약 체결)에도 사용자가 노동자권리를 침해한 것은 위법·부당하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재판을 앞두고는 특히 통상임금에 관한 사건의 재판 준비 때문에 바빴다.

2. 사측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이 미지급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미지급 임금을 청구한 사건이다. 1심 서울중앙지법에서 승소해서 사측의 항소로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2000년 전후 과거 현대자동차서비스 주식회사와 현대정공, 그리고 현대자동차 주식회사가 통합됐는데 당시 현대자동차에 통합되지 않은 현대정공 부분은 현재 현대모비스 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소속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현대자동차지부가 사측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교섭해서 임금 등 단체협약을 체결해 오고 있다. 2019년 통상임금에 관해 현대자동차에서 노사합의로 정리될 때에는 현대모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정리됐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는 2012년 대표소송에 관한 노사합의에 따라 통상임금 대표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직군별 대표자를 선정해서 소송을 진행해 그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를 전체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대표소송에 관한 노사합의를 해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했는데, 과거 현대자동차서비스 주식회사 출신 노동자의 경우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되지만, 울산공장 등 과거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출신 노동자의 경우는 상여금 지급 대상 기간 2개월 중 15일 이상 근무시 지급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1심 서울중앙지법과 항소심 서울고법에서 판결을 받게 됐다. 이처럼 조합원 대부분이 지급받는 상여금 지급기준에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는 상태에서 2019년 현대자동차 노사는 통상임금 관련 합의를 한다. 그 합의는 일정 금액을 지급받고 설·추석 등을 제외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법원에 상고한 대표소송은 이를 추진해 온 현대자동차노조가 주도해서 취하시켰다. 이러한 현대자동차 노사의 합의는 현대모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노사합의는 대표소송 진행 중에 퇴직한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노사합의 당시 재직 중이던 노동자들은 노사합의에 따라 정해 놓은 일정 금액을 받았지만, 대표소송 진행 중에 퇴직한 노동자들은 이를 지급받지 못했다. 퇴직자들은 노사합의로 지급되는 금품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표소송도 취하되면서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에 따라 지급받게 될 수도 없게 돼 버렸다. 그래서 퇴직자들은 사측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송 재판에서도 피고 현대모비스는 몇 개의 노사합의서를 증거로 제출해서 주장하고 있다.

3. 먼저, 사측은 2019년 노사합의를 내세워 재직자에게 금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지 퇴직자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사합의에서 퇴직자를 포함시키지 않았으니 합의 금품의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사합의를 근거로 내세워 원고 퇴직자들이 그 금품 지급을 청구한 것이라면 이러한 사측 주장이 타당하다며 청구는 기각될 것이다. 그 노사합의를 내세워서는 사용자에게 금품 지급을 받기 어려운 것이기에 원고들 소송대리인으로 나는 그 노사합의서를 내세워 주장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소장을 제출할 때부터 그 노사합의를 내세워 청구했을 것이다. 당시 노사합의는 실질적으로 현대자동차에서 대표소송을 취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음에도 대표소송 결과, 즉 대표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퇴직자들을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재직자는 금품을 지급받는데 퇴직했기 때문에 지급받지 못했다. 더구나 15일 이상 근무조건으로 상여금을 지급받지 않았던 현대모비스, 과거 현대자동차서비스 출신의 경우에는 법원 판결로도 얼마든지 고정성이 인정돼 통상임금에 해당함에도 노사합의에 따르면 부제소합의서를 제출하고 노사합의에 따른 금품만 지급받아야 했다. 이처럼 당시 노동조합의 합의는 적어도 퇴직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것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재직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것도 되지 못했다.

다음으로, 사측은 통상임금 관련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각종 노사합의를 내세워 주장하고 있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둘러싸고 현대자동차에서는 당시 임금체계 개편에 관해서 노사협의 기구를 구성해서 협의하고, 이와 관련해서 현대모비스에서도 이러한 협의 결과를 적용하기로 노사합의하게 되는데, 그 노사합의를 살펴보면 현대자동차의 임금체계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사합의에서 현대자동차의 임금체계를 따른다고 하고 있으니, 마치 15일 이상 근무조건의 현대자동차 상여금 지급기준까지도 따르기로 노사합의했다고 사측은 주장하고 있다. 노사합의의 문언 내용을 내세워 주장하는 것인데, 오해될 수 있게 노사합의서에 기재한 탓이다. 이렇게 사측이 합의의 내용을 왜곡해서 주장하는 걸 나는 종종 본다. 노사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사측은 2000년 현대자동차 통합 당시 현대자동차 노사가 현대자동차 노동조건을 승계한다고 노사합의한 것을 내세워 주장하고 있다. 당시 현대자동차 노동조건에 따르기로 노사합의한 것이니 15일 이상 근무조건의 현대자동차 상여금 지급조건도 현대모비스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현대자동차노조가 사측과 합의한 노사합의서에는 분명히 현대자동차 노동조건에 따르기로 한다고 기재돼 있었다. 제대로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판사 등 제3자로서는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상여금 지급조건 등 현대자동차 노동조건을 따르기로 한 것이라고 노사합의서를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기대로 사측은 당시 노사합의서를 제출하면서 주장하는 것일 텐데, 나는 원고 대표와 통화하고서 사측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사업양수도에 따라 현대모비스로 소속이 변경된 구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구 현대자동차의 노동조건을 그대로 승계한다는 노사합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합의는 앞에서 본 노동조합의 합의와 달리 특별히 노동자권리를 삭감한 것이라고 비판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의 합의로서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4. 2000년 노사합의서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위원장 정갑득)이 현대정공 주식회사와 합의해서 작성한 것인데 현대자동차 부품사업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양도하면서 작성했다. 현대자동차의 부품사업 종업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근속연수·임금 등 제반 노동조건, 단체협약 기타 노사합의 사항 등을 승계한다는 것이었다. 사업양수도 과정에서 고용 등 근로관계의 승계에 관해서 노사합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법적으로 보자면 사업양수도의 경우 당연히 고용·노동조건 등 근로관계는 승계되는 것이라서 이러한 노사합의를 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당시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이 같은 노사합의를 위해서 고용·노동조건의 승계, 단체협약 및 노동조합의 승계 등을 요구했을 것이고, 이를 위한 교섭을 요구하고 이러한 노사합의를 위해 투쟁했을 것이다. 그런데 법적으로 당연히 승계가 보장되는 것이라서 이 같은 노사합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니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조합원이 이미 확보한 노동자권리를 사용자로부터 거듭 확인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유감스럽게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의 합의는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기 위해서, 이미 확보된 노동자권리를 재확인하기 위해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노동자권리를 확보하는 노동조합의 합의를 보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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