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비롯한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6일 고용노동부 및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들을 불러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중대재해 사망사고의 원인을 묻고 재발방지대책을 약속받으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SPC 회장 “안전시스템 확충 위한 해외출장”
DL 회장 “건설경기 침체 극복과 투자 확대 위해”

허 회장과 이 회장은 23일 환노위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사유는 모두 해외 출장이다. 허 회장은 “미리 계획된 불가피한 해외 출장 때문에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못하는 점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사전에 예정돼 있던 공식 업무 수행을 위해 현재 해외 출장 중인 관계로 요청하신 일시에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허 회장은 “독일 뮌헨에서 10월21∼26일까지 열리는 IBA(국제제과제빵 박람회)에 직접 참여한다”며 “IBA는 안전투자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참석할 필요성이 크고 해외사업 특성상 일정을 임의로 변경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SPC삼립의 생산시설 안전시스템 확충 및 첨단 자동화설비 투자를 위해 업체 대표들과 MOU 체결이 예정돼 있고 제가 직접 참석하기로 돼 있다”며 자신 대신 황재복 SPC 대표이사를 대신 출석시킬 것을 요청했다.

이 회장은 “국제정세 악화에 따른 시장상황에 대한 현황과 전망을 파악하고, 사업 기회와 리스크 점검을 위해 지난 8월부터 계획된 해외 순방의 일환”이라며 “지난 6일 출국해 미국 체류 중이며, 건설경기 침체 극복 방안을 찾기 위해 도심개발사업 현장을 개별 방문하고 국내 도심환경 개선 및 개발사업에 접목할 부분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25일에는 X-에너지사와 투자확대 검토와 공동협력 논의, 블랙스톤 그룹과 국제분쟁 악화에 따른 시장 전망과 대응 논의가 예정돼 있다. 27일은 엔지니어링사 KBR과 바이오항공유 기술 공동개발 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그는 “DL그룹 전체가 합심해 안전 사업장 조성을 위해 쇄신할 것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그룹사 회장들이 국감장에 불출석하며 국회가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이끌어 내기는 어려워졌다. 지난해 국감과 올해 국감에서는 안전관리체계를 바꿀 실질적 권한이 없는 계열사 대표들이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같은 종류의 중대재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벌어졌다.

그룹 계열사 대표이사가 아니라 그룹 전체를 이끄는 회장들이 책임 있게 그룹 안전관리체계 문제점을 드러내고,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안전관리 시스템 변화를 약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청문회도 나오지 않으면 고발조치 필요”

환노위원들은 청문회를 열자는 데에 입장이 모아졌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이 문제는 이후에라도 청문회를 통해 안전대책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출석 죄를 묻기보다 국민의 질문에 답할 기회를 주는 게 좋겠다. 여기도 불출석하면 고발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노위 야당 간사인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국내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원인이 안전시스템 미비였는데, 안전시스템 설비 확충을 위한 산재예방 관리 양해각서가 (허영인 회장의) 불출석 사유라는 게 분노스럽다. 이해욱 회장은 해외사업을 위한 미팅 몇 개가 전부로, 내용이 부실하다”며 “고발조치하고 청문회를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불출석 사유가 기업 경영 때문이라면 모른 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황재복 대표이사가 답변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고, 꼼꼼히 짚을 수 있는 분이 황 대표이사”라며 허영인 회장의 불참통보를 받아들였다. 박정 환노위원장은 “향후 간사협의를 통해 청문회 개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증언감정법)은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는 것은 금지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면 국회 고발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대기업 오너들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고 벌금을 내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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