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산재 사망자의 유족이 유족보상 일시금보다 많은 손해배상금을 받았더라도 별도의 유족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 부장판사)는 사망한 중국 국적 건설노동자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를 포기해 지난달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유족 “일시금 넘는 배상 받아도 수급권 소멸 안 돼”

A씨는 2019년 8월 인천 서구에 있는 서울도시철도 7호선 연장공사 현장에서 지하 3층 환기용 배기구 방수턱 방수작업을 확인하던 중 거푸집 해체를 하던 지하 1층에서 떨어진 낙하물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유족은 그해 12월 회사와 손해배상금 3억3천만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배상금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정한 유족보상 일시금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회사는 유족에게 배상금을 먼저 지급한 뒤 유족을 대신해 공단에서 일시금을 수령할 계획이었다. 산재보험법(62조)은 유족보상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원하면 유족보상 일시금의 절반에 상당하는 금액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연금 형태로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유족은 공단에 나머지 절반의 유족보상연금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거부했다. 유족보상 일시금 환산액(2억5천600만원) 이상의 손해배상금(3억3천만원)을 지급받아 유족보상 일시금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이유다. 그러자 유족은 2020년 3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유족에 여전히 절반으로 감액된 유족보상연금 수급권 자격이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이 유족급여를 일부라도 반드시 연금 형태로 지급하도록 한 것은 유족의 연금수급권을 강화해 생활 안정과 복리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이라며 “사업주로부터 유족보상 일시금 이상의 배상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 전부가 소멸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 “유족 연금수급권 강화 취지, 수급권 남아”

‘이중혜택’이라는 공단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공단 주장에 따르면) 원래 청구권자인 연금수급권자의 청구금액보다 더 많은 유족보상 일시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수급자의 연금수급권을 두텁게 보호하고자 하는 산재보험법 취지에 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업주가 유족과 일시금 전부를 대신 수령할 수 있다는 전제로 합의했다면 이를 전제로 유족에게 반환을 청구하면 될 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유족보상연금은 수급권자 자격이 유지되는 이상 총액 상한에 제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족보상 일시금은 유족급여로서 최소한의 금액이고, 유족보상연금은 적어도 그 금액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사업주 또는 제3자로부터 일실수입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받을 때 유족보상 일시금 상당액을 공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수급권 침해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법원은 적어도 50%의 연금수급권은 민사 합의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더구나 원고들의 경우 합의금 범위는 유족급여 일시금에 국한된다는 점을 명시했다”며 “합의금을 지급한 건설사가 대위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전체의 50% 일시금 환산액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 연금수급권은 여전히 유족에게 있으므로 공단의 불승인 처분은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단된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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