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얼마 전 약 1년 동안 수행한 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됐다. 회사가 만 60세에 달한 원고의 임금을 삭감하면서 합리적인 이유나 대상 조치를 하지 않았고, 그러한 회사의 조치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 주장한 사건이었다. 승소가 유력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변론 종결 후 판결선고 직전, 갑자기 법원이 “원고는 이 사건 청구를 포기한다.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는 원고패소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당혹감·불안감·분노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는 상황에서 이의신청했고, 판결을 기다렸다. 결과는 원고 전부승소, 이럴 거면 원고패소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왜 했던 건지 법원이 야속하면서도 깊은 안도감에 오랜만에 숙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 사건 판결선고일 바로 다음 날, 만 3년을 수행했던 사건의 항소심 판결도 선고됐다. 대학이 한국인 전임교원과 달리 외국인 전임교원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지급했는데 그것이 근로기준법상 차별 처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사건이었다. 결과는 원고패소. 법원은 업무내용, 전공분야, 재임용·승진 조건, 채용목적 및 채용절차상 차이 등을 이유로 외국인 전임교원에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실제 한국인 전임교원과 외국인 전임교원이 수행하는 업무가 같고, 재임용·승진 조건, 채용절차가 다른 부분을 본질적인 차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다. 패소판결이 선고된 법정이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는 하늘을 날고, 하루는 땅으로 꺼지는 경험을 했다. 물론 모든 사건에서 이러한 감정변화를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 대화하거나 한 사람의 삶을 글로 옮기다 보면, 당사자가 주장하는 억울함에 서서히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의 결과가 마치 내일인 것처럼 느껴지고, 특히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 좌절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여전히 승소는 달고, 패소는 지독하게 쓰다.

2년 전쯤 연세가 지긋하신 선배 변호사께 이런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 선배님은 “승소와 패소 사이 어딘가를 한번 찾아봐”라며 수수께끼 같은 답을 하셨다. 나는 여전히 승소의 환희와 패소의 좌절을 겪으며 승소와 패소 사이가 어디인지 찾고 있다. ‘승소와 패소 사이’를 화두로 삼고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답은 막연하다. 다만, 이정표로 삼을 만한 깨달음은 있었다. 그동안 나는 사건에 의뢰인 인생의 단면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사건에는 의뢰인 인생뿐만 아니라 사건을 수행하는 내 인생의 단면도 자연스럽게 사건에 녹아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사건과 나를 분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내가 느끼는 환희와 좌절마저 오롯이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승소와 패소 사이 어딘가가 아닐까.

아직은 모르겠다. 답을 찾아 조금 의연해졌다는 확신이 들면, 노변정담에 소식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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