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바야흐로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해마다 국감 시즌만 오면 기자들은 일제히 의원실 문을 두드린다. 평소 구하기 어려운 정부의 각종 통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세 정권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숫자가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해 내놨다. 임 의원에 따르면 연평균 비정규직 증가폭은 이명박 정부 때 4만5천500명, 박근혜 정부 땐 13만2천명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땐 연 18만명이었다. 분석 결과 전체 근로자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었다. 비정규직 비율은 문재인 정부 말인 2022년엔 37.5%까지 올랐다.

이를 받아쓴 동아일보는 지난 10일 14면에 ‘비정규직 제로 선언 文 정부 임기말 37.5%로 늘어 역대 최고’라고 제목 달아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를 옹호할 생각은 1도 없지만, 과연 맞는 말일까?

통계는 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비정규직 통계는 더 황당하다. ‘비정규직’이란 말조차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비정규직을 자르면 비정규직 비중은 확연히 줄어든다. 가령 정규직이 100명인 공기업이 비정규직을 30명 고용하다가 정부의 비정규직 축소 정책에 맞추려고 15명을 자르면 이 회사 비정규직 비중은 30%에서 15%로 확 준다. 이 공기업은 비정규직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며 표창을 받는다.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 때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다.

비정규직을 자르기 뭣하면 자회사를 세워 거기서 고용한다. 이렇게 양산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숫자에도 들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때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다.

또 있다. 코로나19 같은 외생 변수도 비정규직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밖에도 변수는 수없이 많다. 이런 변수를 고려하지도 않고 특정 정파 시선에서 “비정규직이 줄었다, 늘었다”고 떠드는 건 말짱 황이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통계를 놓고 언론이 미친 듯이 윤석열 정부 발표를 받아쓰지만 그 함의를 제대로 알고 쓰는 언론이 몇이나 될까.

조선일보는 10일 1면에 문재인 정부의 집값 조작 후폭풍으로 재건축 부담금이 1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를 인용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1면에 이어 3면에도 ‘부동산원 손댄 통계로 부담금 1억·3억… KB통계론 0원’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증여세도 부동산원 시세 통계를 사용하는데 “조작된 통계로 국민 재산권이 침해” 받았다고 썼다. 기사는 부동산 통계에서 부동산원은 무조건 틀렸고, KB는 무조건 맞다는 전제하에 출발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12일 19면에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으로 증여세 더 냈다?, 국힘 의원발 가짜뉴스에 세무 당국선 한숨’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틀 전 조선일보 기사를 정면 반박했다.

증여세 기준인 증여재산의 가액을 계산할 땐 유 의원이나 조선일보 주장처럼 부동산 통계가 아니라 ‘시가’(시장가격)을 적용한다. 또 유의원이 조작된 통계 때문에 과다하게 세금을 매겼다고 밝힌 최근 5년치 부동산 증여세 납세액 106조224억원은 실제 납세자가 낸 세금이 아니라 증여세 과세 대상인 ‘재산가액’이다.

한겨레 기사에서 세무당국은 “국회의원들은 책임지지 않는 발언을 하고, 그 뒷수습은 공무원이 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전임 정부 통계청장을 지낸 국회의원이 이 정도니 다른 정치인은 얼마나 심각하겠나.

통계 기사는 함부로 작성하면 큰일 난다. 그런데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에도 헤럴드경제는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이 39.37%로 ‘30% 중후반대’ 박스권에 갇힌 대통령 지지층과 연동됐다고 보도했다. 우연한 통계 일치를 단칼에 일반화시키는 이 무모함에 말 문이 닫힌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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