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오늘 파업을 하면 내부 인력이 없어서 결국 내일 업무가 많아집니다. 생산직은 라인을 멈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사무직은 상황이 다릅니다.”

현대자동차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정영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기획부장의 말이다. 그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제조업의 화이트칼라 토론회에 참가해 사무직 노조활동의 어려움과 파업 실효성 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이번 토론회는 노조 내 비중이 늘어나는 사무직·일반직·연구직 노동자의 고충을 듣고 효율적인 조직화와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노조가 주최한 토론회다.

이날 참가자 논의는 생산·현장직과 괴리된 사무직의 노조 활동에 대한 효능감과 효과적인 파업 방안 등을 중점으로 이야기했다. 노조 내 사무직 조직이 숙성되지 않아 사례를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는 게 주를 이뤘다.

멈출 생산라인 없는 IT노동자
신제품 출시 멈추는 파업 고민

사회를 본 이성희 노조 정책국장은 쟁의와 관련한 고민을 강조했다. 그는 “생산라인은 파업으로 라인을 멈춘다는 개념이 있지만 IT나 사무직은 라인을 세우는 개념이 없다”며 “조직화는 이뤘지만 조직운영과 투쟁전략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IT개발 노동자 조직화 사례로 주목받은 화섬식품노조도 관련한 고충을 토로했다. 가광현 화섬식품노조 조직실장은 “IT노동자 특성상 온라인을 활용한 선전선동과 여론화에 익숙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집회와 관련한 인식은 높지 않다”며 “쟁의행위 실효성이나 참여를 담보하기 위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사무직이 파업 같은 쟁의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임금·단체교섭안에서 사무직과 관련한 주된 요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생산직은 사무직 젊은 조합원들이 지나치게 성과보상에만 치중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직군에 맞는 효율적인 쟁의행위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기획부장은 “어떻게 해야 사무직이 더 넓게 파업에 참여하고 타격을 더 줄 수 있을까 고민이 깊다”며 “위력적인 파업 방안이라면 생산이 아닌 신제품 출시와 관련한 타격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제조업 사무직군 조직화 위해
‘포괄임금제’ 의제 개발

사무직 조직화와 관련해서도 양상이 판이해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났다. 직군에 상관 없이 모든 조합원이 하나의 조직에 모이거나, 그룹 차원의 자회사 분리로 사무직만 조직한 지회, 생산직 조직으로 출발해 사무직을 포괄하는 형태를 띤 지회 등이다.

설립 배경과 과정이 다르다 보니 사무직의 의사가 조직운영에 반영되는 경로도 다양했다. 이를테면 노조 한온시스템지회는 사무직군의 대의원 선거구를 별도로 조직해 대의원과 확대간부를 배출하는 구조다. 이와 달리 현대차지부는 직군의 구분 없이 선거구를 짠다. 상대적으로 사무직이 대의원이나 확대간부가 돼 조직운영에 목소리를 내는 데 한온시스템지회가 더 친화적인 구조다.

노조는 이날 논의를 시작으로 제조업 내 증가하는 사무직의 요구를 구체화하고 쟁의행위 강화 방안을 마련해 내년 사업에 반영할 계획이다. 박경선 노조 부위원장은 “포괄임금제 같은 정책은 제조업 내 사무직이 노조 문을 두드리는 핵심 배경 중 하나”라며 “금속산업의 변화에 따라 산업 내 직종 분포도 다양해지고 있어 노조 역시 이와 관련한 주요 의제를 개발하고 활동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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