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매일 4~5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죽음의 일터를 바꿔 내기 위해, 일하다 더는 죽지 않기 위해서 2021년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10만명이 국민청원을 했고, 추운 날씨에도 산재 피해 유가족과 노동자들이 죽음을 무릅쓴 단식투쟁을 했다. 이렇게 함께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하지만 법제정시 안타깝게도 50명(억)미만 사업장은 법 준수를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3년 동안의 유예기간이 주어졌고, 내년 1월27일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여당이 ‘50명(억) 미만 적용 시기 연장 원포인트 법안’을 발의하면서 시행연기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이정식 장관은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은지 고민 중”이라며 적용유예와 법 개악을 지지하는 행태를 보였다. 법 제정 때부터 “시기상조, 준비 부족”이라고 주장했던 재계와 중소기업단체, 여당, 일부 보수언론은 여전히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과 준비 부족이라는 구차한 변명 뒤의 현실은 참담하다. 지난해 874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산재 승인 재해 기준)했으며 그중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707명으로 81%다. 민주노총의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50명(억)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자는 1만2천45명으로 80%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10명 중 8명이 50명(억)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3년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정부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을 통해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예방체계 확립과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집중지원·관리를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50명(억) 미만 사업장에게는 ‘그림의 떡’인 제도로 제대로 된 진단과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유지·증진할 의무가 있는 사업주나 기업을 직접 현장에서 견인하고 함께하는 주체로서 노동조합을 지지·엄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력과 불법 세력으로 규정해 정부가 앞장서서 탄압을 주도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운운하며 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재계의 요구에 맞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전문가 TF’ 등을 발족하면서 지속적으로 법 개악을 시도하는 등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이뿐인가? ‘15대 기업규제혁신 과제’를 발표해 노동자·시민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기업의 몰염치한 이윤 추구를 위해 기업에 대한 대부분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태도다.

이렇다 보니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279건의 중대재해 중 기소는 20여건에 불과하고, 처리 기간도 9개월이나 소요되고 있다. 기업에 대한 검찰의 늑장 수사, 소극적인 기소, 솜방망이 구형은 소극적인 법 집행으로 이어져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벌써 7번째 중대재해(8명 사망)가 발생한 DL이엔씨 대표자는 여전히 기업을 대표하며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지금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50명(억)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다. 그렇기에 민주노총과 ‘생명안전 후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은 적용유예를 추진하려는 여당과 정부를 향해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분쇄 10만 서명 운동’으로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고, 지금이라도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기하고자 한다.

정부가 할 일은 50명(억)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법 적용 유예가 아니라 내년 1월27일부터 제대로 법 적용이 될 수 있도록 현재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다. 더불어 ‘기업의 이윤보다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우선인 사회를 위해 정부의 태도를 명확히 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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