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조합원이 언제든지 노동조합의 결산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 조합원의 알권리를 강화하고, 국민과 노동조합에 가입하려는 근로자가 어느 노동조합이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더 나아가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해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과 전체 근로자의 신뢰를 높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고용노동부,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 3쪽) 노동부는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의 목적을 밝히고 있었다. 어제 출근했더니 내 책상에 책자가 놓여 있어 펼쳐 봤더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나는 몇 번을 읽어야 했다. 조합원의 알권리를 위해서, 노동자가 어느 노동조합의 재정 운영이 투명한지 파악해서 노동조합 가입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라니 내가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읽어야 했다. 분명히 노동부는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라는 책자에서 노조회계 공시의 목적을 그렇게 밝혀 놓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이 나라에서 노조 회계공시제도를 추진해 왔던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밝히고 있었기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2. 노동부가 밝힌 목적을 보면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는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결산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가입하는 데 도움을 주며, 노동조합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니 어디까지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손뼉 치고 환영할 일이지 전혀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아닌 것이다. 이상하다. 이 나라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해서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던 윤석열 정부인데 느닷없이 노동자가 노동조합 가입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조합원을 위해, 노동조합의 신뢰를 위해 제도를 마련해 도입했다니. 노동조합의 회계자료를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해서 국가권력이 노동조합의 회계공시제도를 관리하고, 사용자 자본 등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서 권력과 자본을 자주적이고 투쟁적인 활동 등을 위축시키고자 도입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정부의 비열한 노조 때리기 공세”라고 비난하고, 한국노총은 “조세법률주의와 평등주의, 과세요건 명확주의 등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노동조합(산하조직)과 그 상급단체가 모두 결산정보를 공시하면 조합원이 납부한 조합비의 15%에 해당하는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렇게 노동부는 노조회계 공시의 혜택을 밝히고 있다(노동부,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 4쪽). 이것은 무언가. 노조가 회계공시를 하면 조합원에게 그 노조에 납부한 조합비에 관하여 세액공제라는 혜택을 준다는 말이다. 노조회계를 공시하면 조합원에게 납부 조합비를 세액공제해 주겠다는 것이니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노동부는 노조 회계공시의 혜택이라는 제목까지 달아 대단하게 혜택을 준다고 밝힌 것인가.

3. 노조 회계공시제도는 모두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도입한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11조의9와 소득세법 시행령 80조를 통해서 윤석열 정부는 노조 회계공시제도를 도입해 시행하는 것인데, 이와 같이 시행령이 개정돼 시행되기 전에는 어떠했기에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위와 같은 목적으로 도입되고,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일까.

“노동조합(산하조직)에 2023년 1~9월에 납부한 조합비는 종전과 같이 회계공시와 관계없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2022년 12월31일 기준 조합원수 1천인 미만인 단위노동조합(산하조직)은 공시하지 않아도 그 상급단체가 모두 공시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그 단위노동조합이 아무 상급단체에도 가맹하지 않은 경우 공시 여부와 관계없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렇게 위 책자에서 노동부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노조 회계공시제도와 관련한 세액공제를 해설하고 있다.

바로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번 노조 회계공시제도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의 의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종전에는 회계공시와 관계없이 납부한 조합비를 세액공제받았던 것인데, 이번 노조 회계공시제도 도입으로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일정 규모 이하의 단위노조를 제외하고는 노조 회계공시를 하지 않으면 더는 조합원은 납부한 조합비를 세액공제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조합원에게 세액공제의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는 세액공제의 혜택을 주지 않고서 노조가 회계공시한 경우에만 일부 세액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결코 조합원에게 새로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혜택을 박탈하고,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서 국가가 조합비의 세액공제를 박탈하고 축소하는 것을 두고서 노조 회계공시의 혜택이라고 마치 무슨 혜택이라도 주는 듯이 국가권력이 해설하고 있는 것인데 그야말로 권력의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이번 노조 회계공시제도의 목적이 조합원을 위해서,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위해서, 노동조합을 위해서라고 이 나라 국가권력은 밝히고 있지만 이러한 세액공제의 박탈·축소라는 노조 회계공시 ‘혜택’의 실체를 통해서 볼 때 노동자·조합원·노동조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노조 관리 내지 감시·통제와 사용자 자본의 노조 재정 파악 등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노조 회계공시제도가 도입되지 않아도 노조법은 이미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회계감사원으로 하여금 6월에 1회 이상 노동조합의 모든 재원 및 용도, 주요한 기부자의 성명, 현재의 경리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게 하고 그 내용과 감사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회계감사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25조). 이뿐 아니라 노동조합 대표자는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하고,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열람하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26조). 그리고 예산과 결산에 관한 사항은 총회나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11조).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하면, 얼마든지 노조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더욱 노조 재정·회계에 관한 투명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노조 규약 등을 통해서 노조 스스로 논의해서 제도를 도입해서 할 일이지 국가가 관리·감시 및 통제하는 공시제도를 통해서 할 일은 아닌 것이다.

4. 노동자의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 보장은 단순히 사용자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으로부터 노조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기존에 없던 노조 회계공시제도를 도입해서 노조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새로이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단결권 등 이 나라에서 노동기본권 행사에 관해서 보자면 노조법 등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해야 할 법령은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노조법은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몇 개의 조문을 제외하고는 온통 노조의 조직·활동에 관해서 규제하는 조문으로 채우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 보장이라는 1조의 목적은 2조부터 무시돼 그에 부합하는 조문을 읽기 어려운 지경이다. 여기에 더하여 오늘 윤석열 정부는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노조 회계공시 ‘혜택’을 말하면서, 노동자·조합원·노동조합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주장하면서 대통령령을 통해서 노조 회계공시제도를 도입해 노조 활동에 대한 규제를 추가하고 있다. 아무리 왜곡해서 기만한다 해도 오늘 이 나라에서 노조 회계공시의 목적은 노동자·조합원·노동조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노조 재정 등 회계자료를 파악하고 관리·감시하기 위한 것임을 숨길 수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