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의 판정에 불복하는 경우 재해자가 찾는 특별행정심판기관인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산재재심사위원회)가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이후 매해 4천 건이 훌쩍 넘는 재심사 청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구제율은 10%가 채 안 된다. 재심사 결정 과정 중 현장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재심사위원회에 대한 민원은 해마다 커지는 상황이다. 결국 재해자가 돈과 시간을 들여 행정소송을 제기해 겨우 산재를 인정받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매해 현장조사 10건도 안 해, 청구민원은 증가세

16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까지 산재재심사위의 결정 건수는 4천444건으로, 초심 취소된 사건은 5.5%(37건)였다. 2020년 9.29%였던 취소율이 계속 떨어지는 모양새다. 반면 재심사 결정에 불복해 제기해 행정법원이 올해 1~6월 판결한 176건 중 15.9%(44건)는 재해자 손을 들어줬다. 산재재심사위를 거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 결정에 불복해 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경우(14.5%)보다 높다.

우 의원은 “공단의 최초 산재 판단 보다도 재심사위원회 판단이 법적으로 더 미흡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산재재심사위 패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산재재심사위를 거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판결이 확정된 경우는 1천208건, 산재재심사위를 거친 뒤 행정소송을 제기해 판결이 확정된 경우는 799건이었다. 산재재심사위가 초심 판정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산재신청 노동자들이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산재재심사위가 사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지난해 기준 3.8분에 불과했다. 연간 사건 처리건수를 심리회의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2022년 현장조사는 단 7번 시행됐다. 청구민원은 계속 늘고 있다. 2021년 기준 79건이던 민원은 2022년 약 2배 늘어난 148건이 됐다.

심사위원 72% 의료계 인사
위원장은 노동 경험 전무

산재재심사위 문제 배경에는 위원의 자질 문제가 거론된다. 전체 위원 90명 중 72%(63명)는 의료계 인사로 법조계와 노동계는 각 19%(17명), 3%(3명)에 머물렀다. 희귀암과 같이 첨단산업 관련 질병은 의학적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의료계 위원이 중심이 돼 의학적 판단을 내리면서 재해자 구제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반올림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에 종사하다 직업성 암에 걸려 재해자가 산재를 신청한 29건은 모두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산재재심사위원회의 재심사를 통해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에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는 “근로복지공단이 1차적으로 구제를 잘못해서 4천700건이나 이의제기가 몰리는 것 자체가 문제다”며 “그런데 (산재재심사위원회의) 구제율은 더 떨어지고, 재해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행정소송 절차까지 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공인노무사는 “결국 시간과 비용을 들일 수 있는 노동자만 (행정소송에) 가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등 산재 위험이 높은 분들의 권리가 구제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우원식 의원은 “노동부가 산재재심사위원회에 대해 대대적인 조직진단을 해야 한다”며 “전문성 있는 위원장 선임을 위한 개방형 공모와 의료인 중심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위원 비율 개선도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2016년 이후 산재재심사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 출신들로 노동 분야에서 일한 경험도 없는 이들로 채워졌다. 현 조홍남 위원장의 직전 직책은 국무조정실 시도자치지원단 부단장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