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아, 소리를 보는구나​

‘소보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청각 장애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라고 한다. 몇 달 전, 대안학교측에서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는 현장방문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행사를 주선한 사단법인 희망씨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노조에 가입해 있는 공장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지난 11일 방문이 이뤄졌다. 자동차 부품공장이었다.

‘소리를 본다’는 표현이 좋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보다 소리를 본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에서 농인의 자존감이 느껴진다. 소리를 보는 세계의 사람들은 보는 것을 독특한 감각으로 발전시켜 움직임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포착해 또 다른 의미로 읽지 않을까.

장애 학생 부모 중에는 일반적인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장애인 자식들이 입 모양을 읽고 입으로 소리 내는 연습을 통해 장애를 고치거나 최대한 감춰지기를 바라는 분들도 있나 보다. 장애를 열등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만드는 사회적 시선은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부끄러운 자로 만든다. 학생들은 그들의 언어인 수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수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소리를 보여주는 자신의 고유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꿈을 얘기했다

학생들 표정은 밝았다. 왜 방문하고 싶었냐는 질문에 선생님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왔다는 학생의 솔직한 답변에 빵 터졌다. 장애를 이유로 꿈을 접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취직해 일하는 현장을 방문해 더 넓게 보고 꿈을 키우기 위해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들은 특히 ‘꿈’을 강조했다. 판사·유도선수라는 구체적 꿈을 가지고 있거나 꿈을 찾고 있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방문한 노조처럼 장애인 조합원들이 모여서 노조에 인권부를 만들고 장애인 노동자가 인권부장을 맡은 노조는 드물다. 소수자를 존중하려는 기풍이 흐르기에 이곳 노조도 기꺼이 이들의 방문을 수용했을 것이다. 방문자들과 현장 간부들이 서로를 소개하고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생산현장을 돌았다. 제품을 만드는 생산라인을 돌며 꼼꼼하게 노동 과정을 설명했다. 현장을 돌며 곳곳에서 일하는 청각 장애인 노동자들과 가볍게 인사도 나눴다.​

이곳 현장 곳곳에는 볼록거울이 설치돼 있다. 듣지 못해 자칫 안전사고가 나는 것을 방지하려 설치했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볼록거울에도 그런 의미가 있다. 하루에 800대 분량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얘기에 그렇게 많은 자동차를 만드냐며 놀라는 분위기다. 더러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물었다. 노조는 안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기에 자제를 요청하지만, 단순·반복 노동을 견디는 작업자들 나름의 방법이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솔직하게 얘기했다.

68조를 둘러싼 논란

노조간부들은 농인 학생들이 말한 꿈을 “잃지 않고 잘 지키고 찾아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것은 농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비장애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꿈은커녕 지하철 타고 이동하는 평범한 일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장애인 시민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장애인의 꿈은 고사하고 누구나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장애인으로부터 멀어진다.

노조간부는 올해 노사의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고충이 있었다고 했다. 이곳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 68조3항은 여성이나 장애인이 퇴사한 경우 여성이나 장애인을 그 자리에 채용하도록 돼 있다. 장애인을 줄이고 싶은 사용자는 이 조항을 없애려 했다. 약자나 소수자인 동료 시민을 배려하고 지키려는 장치들은 이렇게 공격당한다. 이러면 장애인이 취직할 곳은 사라지고 꿈은 쪼그라든다. 다행히 노조는 안팎의 논란에도 이 조항을 지켰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처음엔 무권리의 소수자이자 약자였다. 노동 3권을 누리지 못한 채 하청업체에서 찌그러져 일했다. 그러나 노조를 만든 뒤 노조할 권리와 함께 연봉도 올랐고, 고용된 사람도 늘었고, 노동강도도 완화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비인격적 행동이 사라졌다. 학생들은 노조에 대한 과격한 이미지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도 접하지만 이렇게 와서 보니 노조의 필요를 느낀다고 했다

이중 운동

우리는 흔히 승객을 버리고 먼저 달아난 선장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먼저 챙기는 책임감을 발휘하고 있을까. 몸이 추우면 가장 시린 곳부터 덥히고, 몸이 더우면 가장 더운 곳부터 식히며, 몸에 이상이 오면 가장 아픈 곳부터 챙기지 않던가.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태도마저 장애인을 특수한 존재로 여기는 차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를 먼저 챙길 때, 우리 모두의 권리가 튼튼해진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시장의 운동과 이 때문에 위험해진 사회는 자기보존을 위해 운동한다. 칼 폴라니는 이를 ‘이중 운동’이라고 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이익 욕망과 더 강력하게 지배하려는 권력욕은 사회를 무너뜨린다. 여기에서 세세하게 따지지 않아도 출산율 0.7명이라는 한국의 현실은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무너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무엇보다 조합원의 살이 찌더라. 연애하는 사람도 늘고 결혼과 출산도 늘었다.” 학생들이 이 공장에 노조가 생긴 이후의 변화에 대해 묻자 나온 얘기다. 노조가 생겨 연봉이 오르고 생활이 안정된다고 반드시 결혼이나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권리 향상은 노동자의 사회생활을 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노조가 사회를 보호하는 증거다.

짧은 만남에서 소리를 보았다

생태계는 물론 인간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도구로 소비하는 시장의 운동에 맞서 인간다운 삶을 지키려 등장한 노조는 사회의 자기보존 운동의 한 축이다. 그런데 조합원이 늘어서 집단력이 커진 노조가 자기 힘만 믿고 자기들 이익만 지키는 것은 조합간부들이 말한 대로 “가오 빠지는 것”이다. 이는 노조가 사회를 지키는 수호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늘 상대하는 자본가처럼 시장경쟁에 물들어 승객을 버리고 달아나는 비굴한 선장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현장을 방문한 ‘소보사’도 새로운 경험을 했지만, 이들을 맞이한 노조간부들도 방문 일정이 끝난 후 깊어진 고민을 얘기했다. 노조의 집단성이 높아지고 힘이 세지면 사회성은 낮아질까. 집단성과 사회성이 반비례한다는 법칙은 없다. 몇 달 전, 노조간부들은 노조의 사회성을 높이는 것이 왜 중요할까를 생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수백 번 조합원 교육보다 이렇게 노조 밖의 장애인과 직접 만나고 접촉하는 것이 사회성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

굳이 민족을 앞세워 세상을 모두 설명하려는 사상이나 계급을 앞세워 세상을 모두 바꾸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다양한 생명을 그 자체로 존중하며 공존하려는 기본적이고 소박한 삶의 태도를 잃지 않는다면, 노동은 물론 약자나 소수자도 존중받고 생태계의 생명들까지 귀중하게 여기는 다정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비록 수어를 모르는 비장애인이지만, 농인 노조간부와 학생들이 수어로 묻고 답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들은 짧은 만남에서 우리에게 소리를 보여주었다.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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