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역학조사 기간에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숨지는 노동자를 막기 위해 산재 선보장 제도에 여당도 호응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1대 국회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11월 중에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어 산재 선보장 제도에 관한 논의를 하기로 했다.

12일 저녁까지 열린 환노위의 노동부 국감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서 17년 동안 일한 뒤 2018년 유방암 3기를 진단받았고 이듬해 산재를 신청했지만 4년의 역학조사 기간 뒤 불승인 통보를 받은 최진경씨의 편지글을 공개했다. 우 의원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역학조사를 기다리다가 사망한 노동자만 111명”이라며 산재 국가책임제를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의 책임이 없는 사유임에도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에 대법원 판례는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규범적 인과관계를 적용한다”며 “대법원의 이런 판례를 무시하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의료적 해법에 머물러 있어 (역학조사 기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산재 국가책임제란 국가가 재해조사 기간을 도과하고도 승인 여부를 결론 내리지 못하거나, 원인불명의 희귀질환이나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에 대한 의학·과학적 연구가 미흡한 경우에 국가가 근로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산재보험을 우선 적용하는 것이다.

우원식 의원은 산재 국가책임제를 포함해 △의료인과 행정기관의 직권 개입 허용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사회적 규범 인정 적용 원칙 명문화 등의 내용을 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규범적 인과관계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례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며 “(역학조사 기간이) 180일이 넘어가면 국가가 선보상하자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답을 유보했다.

그런데 여당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우원식 의원 제안에 공감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임 의원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것이 일하다 죽거나 질병이 생겨 거동이 불편할 때”라며 “삼성에서 백혈병을 승인받기 얼마나 오래 걸렸나. 반올림이라는 단체도 고생을 많이 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장관님이 우려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일하다 다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니 위원장님, 여야 간사가 이번 국감이 끝나면 11월쯤 해서 공청회도 좋고, 토론회도 좋고 한발 한발 우리가 앞으로 나가자고 위원장께 제안을 드린다”고 밝혔다.

박정 환노위 위원장은 “국감 끝난 뒤 11월 정도에 공청회나 토론회 고려해 보도록 하겠다”고 호응했다.

산재 선보장 제도 시행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여야가 긴 역학조사 기간에 고통받는 산재 피해자에 공감하면서 논의에 첫발을 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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