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요즘 서울에서 한창 뜨는 동네 ‘익선동’은 화려한 외관 뒤로 여전히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산다. 나는 몇 년 전 익선동에 5평짜리 원룸을 얻어 1년쯤 살았는데 월세가 70만원에, 관리비도 12만원이나 나왔다. 잠만 자는 원룸에서 한 달에 12만원이나 관리할 비용이 드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주인이 달라는 대로 주면서도 사용 내역은 몰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1일부터 소규모 주택의 정액 관리비 내역을 세분화해 알리도록 규정한 ‘중개대상물의 표시·광고 명시 사항 세부기준’ 개정안을 시행했다. 서민들에겐 엄청난 희소식인데 지면에 보도한 신문사는 동아일보와 매일경제 정도에 그쳤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2일 경제2면에 “깜깜이 원룸 관리비 없앤다, 월10만원 넘으면 내역 공개” 매일경제는 같은 날 25면에 “원룸 관리비도 10만원 넘으면 세부내역 공개”라는 제목으로 각각 보도했다. 둘 다 단신기사라서 국토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겼을 뿐 추가 취재는 없었다.

공인중개사가 월 10만원 이상인 매물을 온라인에 광고할 땐 일반관리비와 사용료(전기, 수도, 난방비 등), 기타관리비로 구분해 세부 내역을 알려야 한다. 원룸 같은 소규모 주택에서 월세 비용을 관리비로 전가하는 그동안의 폐단을 막으려는 조치다. 허위 광고하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광고한 관리비와 실제 관리비가 서로 다르게 나오면 어떻게 할지, 또 과태료는 공인중개사만 물리는지, 공인중개사에게 엉터리로 알려준 집주인은 어떻게 되는지 추가 취재가 많이 필요한대도 보도자료를 일방으로 전달하곤 끝이다.

그나마 두 신문은 이런 일방의 정보라도 소개했지만 다른 신문들은 뭘하는지 모르겠다. 이날 다른 신문들은 사회면과 주요 지면에 윤석열 정부의 야간·출퇴근길 집회 금지 추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아니면 교사들의 잇따르는 극단적 선택을 다루는 후속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회면에 구속영장이 또 기각된 배우 유아인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고, 그 아래엔 동서울터미널에 40층짜리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끔찍한 기사를 실었다. 지금도 드나드는 시외버스 때문에 상습 체증구역인 동서울터미널 일대에 이 정도 쇼핑몰이 올라가면 교통 지옥이 될 게 뻔한데도 건설재벌과 부동산재벌에게만 희소식인 이런 뉴스로 사회면을 채웠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이날 동서울터미널에 40층 복합건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사회2면(14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이날 거의 모든 언론이 국회가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는 소식을 1면과 주요 면에 보도했다. 진보와 보수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정치로 환원하는 놀라운 신공을 보였다. 박수와 비명이 난무하는 국회 본회의장과 국회 앞에 나온 이재명 지지자들의 절규와 일그러진 얼굴이 주요 신문사 1~7면 사이에 사진기사로 실렸다.

이 아수라장 때문에 본회의에서 미쳐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놓고도 진보와 보수 언론이 극명하게 갈렸다. 언론은 이날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법안을 제멋대로 ‘민생법안’이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했다. 조선일보는 출생신고되지 않은 영아가 살해나 유기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보호출산제와 제대로 된 신상 공개 사진이 필요하다며 등장한 머그샷 공개법을 처리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 했다.(조선일보 9월22일 5면 “野 패닉에 본회의 스톱… 보호출산제·머그샷법 처리 못해”)

반면 한겨레는 이날 4면에 “노란봉투법·방송법 개정안은 상정 불발”이란 기사에서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등만 처리한 채 정회했다가, 그대로 산회한 탓”에 노란봉투법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송법 개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같이 ‘민생법안’이라 부르면서도 언론사마다 내용은 확연히 갈린다. 모든 게 진영 논리에 함몰된 결과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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