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해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보복조치로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지 벌써 10개월이 돼 간다. 2018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으로 도입된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의 보장을 통해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으로서, 화물자동차 안전운송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해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표하는 운임”을 화물차주 겸 기사인 화물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보장하는 제도다.

안전운임제 도입 당시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화물차부터 3년간 시범적용하고, 일몰 1년 전 국토부 장관은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를 분석해 연장 필요성 또는 제도 보완사항 등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일몰 1년 전인 2021년 말까지 국회에 제도 보완사항 등을 보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난해 6월 화물연대의 1차 총파업으로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품목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화물연대 2차 총파업을 빌미로 합의를 파기하고 안전운임제를 일몰시켰다.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후 화물차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뒷걸음질쳤다. 지난 6월 화물연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노동시간은 45시간 증가한 월 309시간으로 법정 최장노동시간보다 70시간 이상 많다. 또한 월 순소득은 지난해에 비해 36%(137만 원) 삭감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안전운임제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도라고 공격하지만 시대착오적 주장일 뿐이다. 지난 9월 서울에서 발족식이 열린 세계 안전운임 캠페인에는 39개국의 61개 노조 100만명의 노동자가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전 세계 운수부문 노·사·정이 함께 참여한 ‘운수부문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지침’을 공표했는데, 여기서 안전운임제와 같은 ‘지속가능하며 안전한 보수제도의 원칙’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최초로 전국적 안전운임제 입법 경험을 가진 오스트레일리아는 보수정권에 의해 2016년 안전운임제가 무력화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조직화와 투쟁을 거쳐 올해 9월 전국적 안전운임제 법안을 의회에 재상정시켰다. 비록 전국적 안전운임제는 짧은 기간 시행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미 1979년부터 뉴사우스웨일주 등 주 차원에서 안전운임제를 시행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는 아마존플렉스 등 플랫폼 운송노동자에게도 안전운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브라질은 2018년부터 전국적으로 12개 세부품목 화물차 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는 밴쿠버 항만과 인근 20개 자치단체의 컨테이너 운송 화물차에,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항만에서 최저운임에 미달하는 경우 운송업체뿐만 아니라 화주까지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있다.

세계 안전운임 캠페인을 주도하는 국제운수노조(ITF)는 각국의 운수업이 다단계 공급망(하청)이라는 공통 문제로 인해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 하락과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며 대책으로 안전운임제 투쟁을 주도한 한국 사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투쟁 요구가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세계 노동운동의 의제를 선도하는 것은 안전운임제가 거의 최초의 사례인 듯하다.

안전운임제 투쟁은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우리 헌법이 천명한 인간답고 안전한 노동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이기도 하다. 또 재벌·대기업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수탈하는 다단계 하청이라는 한국 산업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원청·화주에게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임금과 일감을 둘러싼 밑바닥 노동자들의 경쟁을 완화시켜 조직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도 기여한다. 국제사회가 많은 관심과 연대 의사를 보이는 안전운임제 쟁취 투쟁에 대해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지가 더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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