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영진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기독교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만약 노동의 수호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신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노동자를 나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부당해고에서 구하소서”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을 ‘시험(試驗)’이라고 한다. 자본이 득세한 2023년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자본과 기업에게 스스로의 쓸모와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수험자 신세다. 특히 기간제 노동자들은 매년 계약기간 연장이나 정규직 전환과 같이 스스로의 생존과 직결된 시험에 임해야만 한다. 시험을 피할 수도 없고, 그 시험 결과에 따라 ‘다음 해에도 일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시험이 노동자의 생존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법원 역시 평가시험은 필수적으로 공정성·객관성·합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시험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들의 해고 사건을 대리하면서 접한 대부분의 시험과 평가는 사용자의 사업 내용·규모를 막론하고 공정성·객관성·합리성을 결여한 ‘나쁜 시험’이었다. 기간제 노동자들의 업무능력을 정확히 평가해 기업의 성과 창출과 효율적 인력운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세밀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좋은 시험‘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공공기관은 200여명의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면서 매년 평가를 실시하고 그 평가 점수를 근거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 평가의 공정성·객관성·합리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예컨대 총점 100점에서 70점 이상을 받으면 계약연장이 가능한 평가에서 평가자가 40점 배점의 역량평가 점수를 마음대로 부여하게 했고, 점수의 구체적인 근거를 전혀 기재하지 않아도 돼서 연도별 점수가 20점이 넘게 차이 나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또 특정 직종에만 성과와 관계없이 중간등급 점수만을 부여해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만점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각자 집에서 작성해 온 2~3줄의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직무기술서에 무려 30점이나 배점한 뒤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사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즉흥적·주관적으로 점수를 부여하게 했다. 평가 후에도 결과를 통보하기는커녕 이의신청 절차도 보장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해고당할 때까지 자기 점수를 알 수 없었다.

이 공공기관은 이러한 ‘나쁜 시험’으로 2019년 4명, 2020년 3명, 2022년 2명의 노동자를 평가점수 미달로 해고했다. 당연하게도 노동위원회에서 공정성·객관성·합리성 없는 평가를 통해 노동자를 해고했다는 이유로 모두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모범적 사용자를 표방하는 공공기관의 평가조차 공정성·객관성·합리성을 결여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제도 도입에 앞서 정작 수험자인 노동자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자가 노동자나 노동조합과 논의·협의를 통해 평가나 시험을 설계·도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사용자 일방의 편의와 재량만을 고려해 설계된 평가에서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계약연장 시험이 객관적·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 척도로 거듭나려면 수험자인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해 시험 자체의 정합성을 높여야 한다.

저기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노동의 수호신이 내 기도를 들어 줄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노동자들을 ‘나쁜 시험’에 들게 하는 사용자들에게 한가지 제언을 하겠다. 인사평가 설계시에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반영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말고 기꺼이 부담했으면 한다. 상기 공공기관은 총 노동자 9명의 부당해고에 대응하면서 각종 법률 비용과 노동위원회 패소 후 임금상당액 지출, 대응 인력의 인건비, 해고 대응으로 인해 다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기회비용, 평가제도가 기업의 이익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인사관리상 비효율 등 각종 유·무형의 손해를 떠안았다. 부디 ‘나쁜 시험’으로 노사 쌍방이 감내해야 할 손실과 비용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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