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득균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은행의 콜센터 용역을 맡은 회사가 바뀌었다. 은행에서 올린 입찰공고에는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들은 제안서에 고용승계 방안을 마련하라고 규정해 상담사들은 고용이 승계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일부 상담사는 고용이 거절됐다. 고용이 거절된 이들은 다른 동료들을 위해 은행의 부당한 지시 등에 이의를 제기했던 노동자들이었다. 고용 거절에 대해 은행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은행은 기존 용역회사와 새로운 용역회사가 고용을 거절한 것이라며 본인들의 책임은 없다고 발뺌했다.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가 없다며 기각됐다.

이 사례는 간접고용 관계에서 콜센터 노동자들이 원청의 부당한 지시와 고객의 갑질 등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간 콜센터의 경우 7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있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회사가 변경되는 경우 원칙적으로 고용이 승계되지 않는다. 다만 법원에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고용승계 기대가 인정돼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을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 ‘고용승계 기대’는 원청과 용역회사 간 용역계약서에 고용승계를 의무적으로 하는 조항이 없는 한 인정되기 쉽지 않다.

위의 사례는 은행에서 입찰공고에 고용승계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기재하고, 입찰하는 용역회사가 ‘희망하는 직원을 고용승계한다’는 제안서를 제출했음에도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가 인정되지 않았다.

이렇듯 현실적으로는 고용이 승계된다는 기대가 인정되기 쉽지 않아 회사가 변경되면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고용이 거절될 수 있다. 특히 이전 회사 근무 중 원청의 지시에 정당한 이의제기를 했거나, 고객 등 갑질에 대해 이의제기한 경우 회사 변경 시 고용 거절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 나온 것처럼, 콜센터 노동자들은 갑질에 시달리며 근무한다. 회사 및 원청은 ‘콜수’ 등의 지표만 집중해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외면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 48%가 갑질 등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 있다고 응답하는 등 콜센터 노동자들은 수많은 갑질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2018년 ‘감정노동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고객 등 제3자의 폭언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부과됐다. 상담사들은 여전히 고객 등으로부터 폭언에 노출되고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갑질 방지 대책을 요구할 수 없는 이유는 민간 콜센터의 간접고용 구조에서 비롯된다. 상담사들이 원청에게 교섭을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에다, 정당한 이의제기에도 회사 변경 시 고용이 거절될 상황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를 의무화하는 ‘사업이전 등에서의 근로자 등 보호에 관한 법률’과 간접고용 노동자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하는 원청을 사용자로 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으나 아직 통과되지 못한 상태이다.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원청을 상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현재의 간접고용 구조에서 상담사들은 갑질에 노출돼도 보호받을 수 없다. 감정노동보호법이 시행돼도 상담사들이 갑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이유다. 상담사들의 노동으로 혜택을 받는 원청에게 교섭 의무를 부과하고, 회사 변경 시 특별한 잘못이 없는 상담사들의 고용을 원칙적으로 승계하는 원칙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다음 소희’는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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