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현 노동활동가

독립한 집을 예쁘게 꾸미고 엄마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몇 장 보냈다. 사진을 본 엄마가 답장했다. “너 집이라고 깨끗하게 사네.”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갔을 때와 잠깐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 때를 생각해 봤다. 나는 가사노동을 하기 싫어했고 실제로도 잘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안일은 귀찮으니까. 안 하고 쉬는 게 몸이 편하니까. “오늘도 일 힘들었다”고 말하면 이해해 주니까.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나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마음과 몸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남성들은 결혼 상태에 따라 가사노동참여를 달리한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과 같이 살 때(43.8%)보다 독립해서 혼자 살 때(67.7%)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율은 올라간다. 연구진은 “남성들이 가족과 같이 살 때는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어머니가 있어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지만, 혼자 살 때는 본인이 가사노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혼자 살 때는 3명 중 2명의 남성이 가사노동을 수행했다면, 결혼 후에는 가족과 살 때보다도 낮아진다(42.7%). 연구진은 “결혼을 하면 아내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논문을 보면서 엄마에게 가사노동을 전가했던 내 모습이 상기됐다.

지난달에 제출한 석사 졸업논문은 가사노동을 주제로 다뤘다. 연구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런 답변이 있었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집에서 나만 아는 것이 마음을 좋지 않게 한다.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집안일 팁을 포스팅하는 심리가 이해가 간다.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인터뷰한 시점은 내가 다니던 직장이 서울시의 민간위탁사무 종료로 없어졌던 때였다. 출근하지 않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가사노동에 집중하게 됐다. 한번은 새로 산 세탁기의 배수 호스를 배수구에 연결하려고 했는데 높이가 맞지 않았다. 플라스틱 틀을 잘라서 끼워 넣었다. ‘내가 노력해서 세탁기 호스가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게 뿌듯하고 기쁜데 이건 나만 알고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터뷰 내용이 마음에 콱 박혔다. ‘나의 노력과 뿌듯함을 같이 사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거’라는 인터뷰 내용을 그제야 실감했다.

세탁기 호스를 잘 끼워 맞췄다고 승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고, 연금수령액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 뿌듯함이 거짓된 감정인 것도 아니다. 내가 일상을 더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노력이라는 만족감과 이 노력이 나를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보람참, 같이 사는 사람이 하루를 편안하게 보냈으면 하는 다정함이 담긴 뿌듯함이다.

엄마의 카톡과 인터뷰의 대답을 떠올리니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고 가사노동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사노동이 필수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 일상을 위해 집에 함께 사는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크다.

여성이 가정 내에서 가사노동을 무급으로 수행함으로써 남성들은 유급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자본은 노동력의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가사노동은 평가절하 당하고 생산성이 없는 일로 여겨져 왔다. 책 <혁명의 영점>과 <캘리번과 마녀>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실비아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을 한다. 1974년에 낸 책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Wages Against Housework)>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임금 노동이라고 말한다.” 가사노동을 가족에 대한 여성의 자발적인 사랑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깨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자는 시도다.

가사노동은 일상에 필수적인 노동이라는 인식 확산이나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자는 운동, 남성들의 주체적인 가사노동 수행과 같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어야 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을 주면서 고용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처럼 엄마에게서 아내로 미뤄 온 가사노동을 또 다른 여성에게로 전가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노동활동가 (bethemi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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