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은 ‘페이닥터(봉직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근로자성을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 태도에 따른 취지다. 페이닥터와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의료업계의 관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체불 처벌 전력에 ‘위탁계약’ 전환
퇴직금 또 미지급에 기소, 2심 무죄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최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울 중랑구 소재 J의원 원장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하며 상시근로자 6명이 일하는 의원을 운영한 A씨는 2017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근무한 페이닥터 B씨의 퇴직금 1천4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고 미지급에 대한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임금체불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어 ‘위탁진료계약’으로 계약 형태를 바꿨지만, 기소를 피하지 못했다. A씨는 의원 운영 초기 재직하던 의사 C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아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이 확정된 바 있다. 이에 공인노무사의 코칭을 받고 위탁진료계약 형태로 노무를 해결했다.

B씨와의 계약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1년간 위탁받은 진료업무를 이행하면 그 대가로 매달 600만원(현금 135만원 별도)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계약서에는 “B씨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관계법과 관련한 부당한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원에서 유일한 의사였던 B씨는 진료실에서 평일과 토요일에 근무했다.

1심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판단은 달랐다. 위탁진료계약서를 근거로 B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의원에는)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고, B씨는 어떠한 지시나 감독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A씨는 B씨가 진료업무를 적절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 계약해지나 손해배상 청구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징계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B씨가 휴가 갔을 때 대체의사가 진료한 점도 근거가 됐다.

대법원 “진료 따른 고정적 대가 지급”
“진료 실적 보고, 상당한 지휘·감독”

대법원은 원심을 다시 뒤집었다. B씨를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위탁진료계약이라도 계약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해진 시간에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피고인은 그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씨의 지휘·감독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B씨는 월 1회 진료 수행 현황과 실적을 A씨에게 통지했고, A씨는 보고가 불성실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A씨는 B씨의 근무시간과 장소를 관리하고 B씨 업무에 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B씨가 받은 돈 역시 ‘근로 대가’라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B씨는 A씨가 제공하는 의료장비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했고, 환자 치료실적에 따라 급여의 변동 없이 매달 고정적으로 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A씨의 구체적·개별적 지시가 없었지만, 이는 의사의 진료업무 특성에 따른 것일 뿐 근로자성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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