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민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회원들이 2021년 4월19일 국회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 사슬을 잘라내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적단체에 찬양·고무·동조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제작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정한 국가보안법 조항이 헌법재판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또다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일부 조항은 재판관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정족수(9명 중 6명)에서 1명이 모자랐다. 국가보안법이 일부 개정된 1991년 이후 8번째 판단이다.

위헌 정족수 6명 미달, 일부 조항 1명 차이
다수의견 “북한과의 관계 본질적 변화 없어”

헌재는 26일 국가보안법 7조1항(찬양·고무)과 5항(찬양·고무 등 목적 표현물 제작)에 대한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합헌 결정했다. 반국가단체를 정의한 국가보안법 2조1항과 이적단체 가입을 처벌하는 7조3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헌재는 지난해 9월15일 공개 변론을 진행해 위헌 결정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청구인들은 7조가 헌법상 표현·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며 유엔 권고나 국제규약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국가안보의 위협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고 특히 오·남용 사례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관 다수는 합헌 결정했다. 이번에 위헌 심사를 받은 국가보안법 조항은 7조1항 중 ‘반국가단체 활동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 부분과 5항 중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제작·운반·반포한 자’ 부분이다. 헌재는 7조1항은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합헌으로 판단했다. 7조5항 중 ‘제작·운반·반포’ 부분은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표현물 소지·취득’ 부분은 4 대 5 의견으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재판관 다수의견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봐 온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국제정세나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이유를 밝혔다. 헌재는 죄형법정주의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는 청구인 주장도 배척했다. 그러면서 “위험성이 현존하는 단계에서야 공권력 개입이 이뤄진다면 국가의 안전과 존립이라는 중대한 법익을 지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가 법률의 개정·헌법재판소 결정·법원 판결 등을 통해 계속해서 제한돼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적행위·이적표현물 조항이 오·남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대의견 “지지 태도 불과, 국가 전복 의도 아니다”
시민단체 “체제 순응적 결정, 수치스러운 일”

반면 5명 재판관(유남석·정정미·김기영·문형배·이미선)은 7조5항 중 ‘표현물 소지·취득’ 부분에 대해 “막연한 가능성만을 근거로 표현물을 소지·취득하는 것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적행위 금지 조항’ 모두에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현재 우리 사회는 상당히 성숙했고 찬양·고무 등 행위는 지지의 태도를 나타낼 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전복이나 폐지를 도모하는 행위가 아니다”며 해당 조항이 의사표현 형성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한 시민단체는 유감을 표명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제 순응적인 헌재가 극히 보수적인 현실을 옹호하는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국가보안법 위헌소송 대리인단 단장인 최병모 변호사(전 민변 회장)는 “국가보안법 7조는 이미 노무현 정부 때 폐지 합의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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