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5일 근무하는데 부당하다고요.” 임금 40%를 삭감당한 노동자의 항의였다. 3일 근무해야 하는데 회사가 임금체불했다고 체불임금을 지급해 달라고 청구해야 했다고 내게 핏대를 올렸다. 바짝 열받은 전화는 30분이 넘었는데 끊어질 줄 몰랐다.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대폭 삭감된 그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주장하는 소송이었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젊은 애들 처지를 잘 알기에 자신은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소송이었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묻고 이해시킬까 하다 그만뒀다. 격하게 쏟아 내는 그의 말에 묻힐 게 뻔했다. 그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판결 선고된 임금피크제 사건의 원고였다. 대표자들이 항소 의사를 확인하는 중인데, 소송대리인인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연락 달라고 해서 전화를 했던 거였다.

2. “나는 부당하다.” 결국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노동자라고 덜 근무하지도 않는데 임금을 삭감하는 건 부당하다”고 그는 재판에서 주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더 적게 일하지 않는데 임금을 삭감하는 건 임금체불이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맞다. 부당하다는 그의 말이 맞다.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내가 주장한 것이 맞지 않다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부당하다는 그의 말은 맞다. 정년을 앞둔 고령노동자라고 임금을 삭감하다니. 삭감한 만큼 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부당해야 한다. 다만 그는 구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부당하다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해야 임금체불로 법원에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과반수노조가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임금피크제)에 합의해서 그가 임금을 삭감당한 것이 위법·무효라고 법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거기서 그가 하고자 하는 말, 덜 일하는 것도 아닌데 고령노동자라고 해서 임금을 삭감당하는 부당함을 겪고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회사 제규정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아 온 노동자가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사용자가 임금을 삭감한 것을 부당하다고 법적으로 주장하긴 어렵다. 적어도 오늘 이 나라에서는 그렇다. 수십 년을 수십만 건의 판결로 법원이 쌓아 온 취업규칙 등 노동법리와 그것과 서로 얼켜서 짜 놓은 노동법령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자가 법적 구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명백히 그렇다. 거기서 근로계약은 채용시 작성하면 그만이다. 그것도 몇 가지 명시하고서 회사 제규정, 즉 취업규칙에 따르도록 하고 채용 이후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회사 인사부의 캐비닛 어딘가에 먼지 쌓인 채 처박혀 있을 것이다. 근로계약에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명시해 놓고 있다면, 그래서 그에 따라 지급받고 있다면, 사용자가 과반수노조와 합의해서 임금피크든 뭐든 임금을 삭감하는 짓은 할 수가 없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합의해 스스로 근로계약을 변경해서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한 사용자든 노조든 맘대로 못한다.

취업규칙 기준보다 근로계약이 우월하니 노동자는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 몇 년 전 대법원이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했던 문경레저타운 사건이 바로 이러한 근로계약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연봉계약을 체결했고,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연봉을 삭감해서 노동자가 부당하다고 찾아와 상담했을 때 나는 승소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하급심에서 과반수노조와 합의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니 적법한 취업규칙으로서 효력 있다면서 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하는 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내 확신대로 됐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노동현장 사업장에서 노동자에겐 근로계약은 그 모습을 찾기 어렵고,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내세워 주장하지 못 한다. 그래서 내게 전화항의한 노동자의 부당하다는 주장은 무시된다. 근로계약에서 구체적으로 임금액을 정하고 있다면 더 일하지도 않는데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해서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법적 주장으로서는 무시된다는 것이다.

3. 그렇다고, 임금피크제처럼 임금삭감 제도를 노사합의로 도입했다고 해서 위에서 본 것처럼 취업규칙 등 법리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무작정 자포자기하라는 건 아니다. 노사합의한 것이니 취업규칙·단체협약 법리로 주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법령위반은 다른 문제다. 그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강행법령이라면 그에 반하는 취업규칙·단체협약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을 위반해서 무효라고 판결했다(대법원 2022.5.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물론 모든 임금피크제가 그렇다고 하지 않았다.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 위법·무효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 이 나라에서는 이 대법원 판례 법리를 가지고 법원에서 노동자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사용자는 무효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법원 판례는 노동자의 정년을 연장해 주지 않는 임금피크제의 경우 그 도입목적이 타당한지, 임금삭감의 불이익이 큰지, 불이익을 보상하는 어떠한 대상조치를 해 줬는지, 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재원이 도입목적 실현에 사용됐는지 등을 따져 고령자고용촉진법상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래서 합리적 이유가 없으면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인데, 이러한 판례 기준에 기대서 위법하다 아니다 다투는 것이다. 여기서 임금삭감의 불이익에 대한 대상조치 중 하나로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일정 기간 유급휴직 내지 휴가, 재취업 교육, 수월한 업무 배치, 그리고 근로시간단축이다. 바로 여기서 근로시간을 해 주지 않고서 일을 시켰다고 사용자의 대상조치는 없었거나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이렇게 끄적거리다 보니 노동자에게 친하지 않은 법의 숲을 헤매고 말았다. 뭔가 복잡한것이 대단한 법과 법리라고 생각되겠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임금피크제는 아주 예외적으로 무효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근로계약 법리를 쪼그라들게 하고, 취업규칙을 사업장의 법으로 추켜세우고, 연령차별의 합리적 이유를 폭넓게 고려하고서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웬만해선 무효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러저런 법리고, 청년일자리 등 도입이 무슨 의의가 있다는 선전공세고 뭐고 다 치우고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개념대로 최고 임금수준을 인상 없이 그대로 정년퇴직시까지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실질적으로 정년을 연장해 준 것도 아니다. 대부분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촉진법상 법적 정년 60세를 정년으로 하는 것이라서 노동자에게 정년을 연장해 준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일 뿐인데, 고령이라고 임금을 차별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동자가 바라지 않는 합리적 이유는 거짓이다. 이처럼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앞둔 늙은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봐야 마땅하다.

5. 사실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죄가 많다. 과거 퇴직금 누진제 폐지부터 연봉제 도입, 사업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각종 유연 근로시간제와 포괄임금제 등에 더해 오늘 임금피크제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합의하고 동의했다. 과반수노조로서 지위는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 등 권리를 삭감하는 데 활용됐다. 물론 그때마다 변명은 있었다. 그보다 더한 사용자의 요구나 행동을 막아 냈노라고, 그 대신 성과급 등 다른 무언가를 얻어 냈노라고. 그 변명대로면 이 나라에서 노조는 얼마든지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는 데 사용자와 합의하고 동의할 자세가 돼 있는 거라고 나는 읽는다. 그 변명으로 이 나라에서 공공기관을 비롯해서 광범위하게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 사용자가 과반수노조와 합의하고 동의를 받아서 도입됐다. 임금피크제 사건을 대리하다 보면 노조가 도와주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데 합의하고 동의했으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오늘 임금피크제 앞에서는 노동조합은 죄인이다.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는 데 결코 합의하고 동의할 수 없노라고, 노조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흔들리지 않는 노조를 보고 싶다. 그런 노조라면 임금피크제에 당연히 “부당하다”고 말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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