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공인노무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고용평등상담실장)

2019년 처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나에게 주어진 한 대의 전화기는 나의 전부였다. 전화기 너머의 수많은 ‘나’들은 주로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의 괴로움을 이야기했지만, 때때로 인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기도, 언젠가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기도 하면서 나는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이렇게 수많은 목소리와 나의 마음이 만나는 이곳은 고용평등상담실이다. 물론 그 수많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때도 있었다. 피해자를 원망하던 날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던 때도 많았다. 하지만 꼬박 4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울리던 이 전화기는 아니, 그들의 인생은 나의 전부였다.

23년간 전국 약 20여개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던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고, 이를 8개의 노동지청의 업무로 포섭하여 운영한다고 한다. 고용평등상담실 뿐만 아니라 10개의 ‘직장내 괴롭힘 상담센터’와 44개의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또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예산 전액 삭감이다.

사실 노무사 입장에서 직장내 성희롱 상담업무는 속된 말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담이다. 육하원칙에 맞춰 본인의 피해 사실을 입력하면 상황에 대한 판단과 솔루션이 간단하게 산출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노동사건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그것이 나의 존엄과 관련된 것일 때는 인간은 본인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내가 겪은 피해 사실조차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하기 힘든, 답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에는 수많은 제약이 있는, 그 과정에서 내 개인의 일상도 필연적으로 함께 흔들리는. 이 험난한 소용돌이 속에서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게 만드는 힘은 법률적 지식을 주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피해자들이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듣고, 그가 가진 문제 해결의 욕구를 함께 탐색하게 하고, 그가 처한 취약성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면서, 없던 길도 만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찾는 사람들.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용평등상담실 활동가 선생님들이 23년간 지켜오던 것들이 있었다.

현장 최전선에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던 이곳이, 누군가에는 최후의 보루였던 고용평등상담실이, 하루아침에 그냥 그렇게 사라져야만 하는 현실이 사무치게 서럽다. 내가 지난 4년간 마주하던 그 목소리들은 약하고 강해서 각자가 가진 고유함을 받아 안고 오랫동안 함께 붙잡고 있어야 들리는 목소리들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고용평등상담실 각 단체가 가진 특수성과 만나 법률지원을 통해서, 노동조합을 통해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언론화를 통해서, 입법화를 통해서 이 사회에 터져 나온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다. 단언컨대 노동청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민으로 온전하고 안전하게 노동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언제든 고용평등상담실의 문을 두드려 주시라. 당신의 삶을 함께 응원하고, 함께 살아 내려 하는 여성들이 당신 곁에 있다.” 2020년 12월, 처음 이 지면을 할당받았을 때 내가 글 마지막에 썼던 문장이다. 2023년 9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고용평등상담실 폐지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험난한 풍파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길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고용평등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수많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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